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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공공도서관이 쇼핑센터 안에…시스타도서관의 실험

입력
2015.10.19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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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8일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 북부의 대형 쇼핑센터인 시스타 갈레리아. 수많은 쇼핑객들이 들락거리는 이 곳 정문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면 시스타도서관(Kista Bibliotek)이 있다. 점포 하나라도 더 넣으면 임대료 수입이 얼만데 쇼핑센터에 도서관이라니 하는 통념을 보기 좋게 뒤집었다. 볼링장과 영화관, 레스토랑을 포함해 180여개의 점포가 들어 찬 쇼핑센터 안에 일반 상점과 나란히 면적 2,400㎡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2층 창가의 해먹에 드러누워 책을 보다가 밖으로 눈길을 돌리면 1층 로비를 오가는 쇼핑객이 보인다.

스톡홀름의 43개 공공도서관 중 하나인 이 도서관은 덴마크 문화부 산하 문화예술위원회가 제정하고 국제도서관협회연맹(IFLA)가 선정한 2015년 세계 최고 공공도서관이다. 2013년 이후 문을 연 공공도서관을 대상으로 미래 도서관의 모델이 될 만한 곳을 선정해 주는 상이다. IFLA 심사위원들은 “다문화지역 한복판에 꼭 있어야 할 곳에 자리잡은 도서관”이라며 “지역사회와의 협력, 디지털 서비스 등을 통해 이용자에게 다양한 활동을 제공한다”고 평가했다.

스톡홀름의 시스타도서관은 대형 쇼핑센터 안에 있다. 창 밖으로 상점이 늘어선 1층 로비가 보인다.
스톡홀름의 시스타도서관은 대형 쇼핑센터 안에 있다. 창 밖으로 상점이 늘어선 1층 로비가 보인다.

시스타는 에릭슨, IBM, 마이크로소프트 등 1,000개 이상의 정보통신 기업과 스웨덴 왕립기술원, 스톡홀름 공대 등이 모여 있어 ‘북구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과학단지다. 주민 3만명 가운데 78%가 스웨덴이 아닌 외국 출신인 다문화지역이기도 하다. 시스타도서관의 운영과 서비스는 이 같은 지역 특성에 맞춰져 있다. 내부 곳곳에 설치된 디지털 스크린은 이용자들이 원하는 정보와 도서관의 활동을 소개하는 게시판이자 소통 채널이다. 도서 검색용 모니터에서 친구에게 책을 추천하는 이메일을 바로 보낼 수도 있다. 독서는 그렇게 즉시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활동이 된다.

소장자료의 40%를 스웨덴어가 아닌 외국어 자료로, 어린이책과 성인책의 비율을 50 대 50으로 갖추겠다는 목표도 이 도서관의 남다른 점이다. 다문화지역의 도서관으로서 지역 공동체의 미래를 준비하려는 세심한 전략이다.

본래 다른 곳에 있던 시스타 도서관이 이곳으로 옮겨 문을 연 것은 지난해 8월. 상업시설인 대형 쇼핑센터에 돈 안 되는 도서관이 입주한 것은 건물주가 시민교육에 관심이 많아서 파격적인 조건으로 공간을 내줬고 스톡홀름시가 지원한 덕분이다. 이전 개관 1년 만에 이용자가 세 배로 늘었고 도서 대출은 두 배로 뛰었다. 책을 안 읽는 연령대로 꼽히는 15~18세 남자 아이들의 독서율이 날로 떨어지는 현상도 이 도서관에는 없다.

그저 책을 읽거나 빌리기만 하는 곳이 아니다. 방과후 숙제도우미, 북클럽, 스웨덴어가 모국어가 아닌 주민들을 위한 언어 카페, 책을 중심으로 연극이나 간단한 공연, 모임에 쓰는 작은 극장과 강당 등 다양한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진다. 이 많은 프로그램은 추가 예산 없이 지역 내 기업이나 사회단체, 대학 등과 협력해 개발하고 운영한다. 청소년 축구클럽을 운영하는 기업의 직원들이 도서관에 와서 회원 아이들의 수학 숙제를 도와주는 자원봉사를 하기도 한다.

시스타도서관의 내부 공간은 벽으로 막힌 곳 없이 툭 터져 있다. 원형 서가 오른쪽의 노란 격자 공간은 컴퓨터 사용 구역이다.
시스타도서관의 내부 공간은 벽으로 막힌 곳 없이 툭 터져 있다. 원형 서가 오른쪽의 노란 격자 공간은 컴퓨터 사용 구역이다.

시스타도서관의 어린이ㆍ청소년 담당 사서 레베카 메디치는 “도서관은 만남의 장소”라고 강조했다. 주거지와 일터, 이주민과 첨단과학 인력, 여러 언어 사용자라는 이질적 요소를 연결하고 이용자들의 다양한 욕구에 부응하는 곳,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이야기하는 곳이라는 설명이다. 조용히 공부하려면 1인실부터 다인실까지 크고 작은 21개의 스터디룸을 이용하면 된다.

도서관 내부는 칸막이가 없다. 어린이, 청소년, 어른 책을 따로 배치했지만, 앞을 가리는 벽 없이 툭 터져 있다. 책장과 소파, 책상 등 가구는 한결같이 실용적이면서 세련된 감각의 편안한 디자인으로 되어 있고, 의자는 원하는 대로 이리저리 움직여 앉을 수 있다.

육아휴직 중인 여러 나라 출신 부모들이 아기를 데리고 도서관에 모였다. 친구를 사귀고 스웨덴어도 배우는 프로그램이다.
육아휴직 중인 여러 나라 출신 부모들이 아기를 데리고 도서관에 모였다. 친구를 사귀고 스웨덴어도 배우는 프로그램이다.

이 도서관의 다국어 서비스는 여러 나라 신문뿐 아니라 스웨덴어가 모국어가 아닌 아이들을 위해 모국어와 스웨덴어, 두 개의 판본을 세트로 갖춰 놓는 쌍둥이 그림책에서도 잘 드러난다. 똑 같은 책을 두 개의 언어로 보면서 자연스럽게 스웨덴어를 배우고, 모국어도 잊지 않게 하려는 배려다. 이용자 중에도 어린이와 청소년에 특히 중점을 둔다. 어릴 때부터 책과 친해져야 평생 독서로 이어진다는 판단에서다. 기자가 방문한 날은 육아휴직 중인 부모들이 아기를 데려와서 함께 노래하고 이야기를 하는 모임이 있었다. 여러 언어를 쓰는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자연스럽게 친구를 사귀고 스웨덴어도 배우는 프로그램이다.

시스타도서관은 시스타 갈레리아 영업시간에 맞춰 1년 362일, 매일 밤 9시까지 문을 연다. 여느 도서관보다 개관 시간이 길기 때문에 25명의 직원이 교대로 일한다. 이용자가 너무 늘어서 직원을 더 채용할 계획이다.

철저히 이용자 중심, 생활 밀착형 서비스를 하는 게 이 도서관의 원칙이다. 이는 스톡홀름 시의회가 채택한 도서관 플랜 3.0의 모토, “움직이는 도서관이 움직이는 사람을 만나면 무엇이든 일어날 수 있다”를 구현한 것이다. 움직이는 ‘동사형’ 도서관은 북유럽 도서관이 강조하는 핵심 전략의 하나로, 이용자가 원하는 바에 맞춰 서비스와 운영의 혁신을 거듭함으로써 도서관을 모든 사람을 위한 일상의 중심으로 가꿔나간다.

이곳에서 영화 만들기를 체험한 한 소녀는 도서관을 찍은 자기 작품에 ‘고마워요’라는 제목을 붙였다. 집이 좁아서 조용히 공부할 곳이 없었는데, 도서관에 와서 공부도 하고 친구도 만날 수 있어 행복하다며 붙인 제목이다. 레베카 메디치씨가 들려준 이 작은 일화에 도서관의 역할과 가치가 깃들어 있다.

스톡홀름=글ㆍ사진 오미환 선임기자 mh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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