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들이란 없다, 다만 해석들이 있을 뿐이다.” 니체의 이 말은 고정된 사실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근대인식론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드러내면서, 절대적 ‘사실’이 아닌 ‘해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탈근대 담론의 등장을 예비한다. 니체의 이 통찰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지닌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 국정화에 반대하는 이들의 성명서들이 나오고, 반대시위가 초ㆍ중ㆍ고ㆍ대학생들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만약 ‘국정화’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하여 기록을 하는 이들이 반대론은 생략하거나 사소한 것으로 만들면서 찬성론만을 부각해서 기록한다면, 그것은 이미 ‘왜곡된 사실’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실들’이란 불가능하며,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른 다양한 ‘해석들’만이 가능한 것이다. 진보나 보수 또는 좌파, 우파, 중도파이든 그 누구도 한 사회의 복합적인 역사 해석의 모든 층을 아우르는 ‘절대적 눈’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정화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는 역사를 보는 관점과 해석들의 ‘다양성’을 억누르고 ‘획일성’을 강요한다는 점에 있다. 역사에 대한 획일적 관점의 강요는 시대착오적인 전근대적 방식으로써, 민주주의 사회의 언론, 학문, 사상의 자유라는 보편가치와 정면으로 대치된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들을 양산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식민종주국이 식민지인들을 지배하는 데에 쓰였던 ‘통제의 도구’들 중의 하나는 ‘책’이었다. ‘고정된 텍스트’로서의 책은 사람들의 다양한 ‘경험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는 ‘공적 권위’를 가지게 된다. 이러한 이유에서 전체주의 체제에서 정치가들이 우선으로 사용하는 ‘통제의 도구’는 ‘획일화된 지식’ 확산의 통로가 되는 ‘책’이다. ‘획일화된 지식’에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들은 ‘사회를 분열시키는 이들’이라는 표지를 붙이고, 반역자로서 추방되며, 관점의 ‘상이성’은 ‘나쁜 것’ 또는 ‘위험한 것’과 동의어로 만들어진다.
미셸 푸코는 ‘지식의 중심’과 ‘권력의 중심’은 일치한다고 하면서 권력과 지식의 상관관계를 치밀하게 분석한다. 베이컨의 ‘지식이 힘이다(knowledge is power)’가 아니라, 푸코의 ‘권력이 지식이다(power is knowledge)’가 권력자의 통제구조를 예리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권력/지식’의 불가분의 상관관계에 대한 분석은, 특정한 통치자에게서 작동되는 ‘제국의 욕망’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잘 보게 한다. 통치자가 자신의 ‘제국적 권위’의 토대를 확고히 하는 데 필요한 도구는 ‘권력’만이 아니다. 그 권력을 가진 이들이 ‘지식’을 생산하고 확산하는 역할을 하면서, 그 권력의 유지와 확장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고자 하는 의도는 ‘권력’과 ‘지식’을 그 통치적 권위의 토대로 확고히 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제국의 욕망’과 매우 닮았다.
첫째, ‘총체화의 욕망’이다. 이 욕망은 차이와 다양성에 대한 ‘병적인 경계’로부터 시작된다. 국정화가 ‘국민 통합’을 지향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은 모든 상이성들을 억누르고 국가권력의 그늘 아래 모든 국민을 집어넣고자 하는 총체화의 욕망이다. 이 ‘국민 통합’의 논지는 ‘획일성’이 곧 ‘통합’이라고 왜곡시킨다. 지배욕망을 강하게 지닌 통치자일수록 ‘상이성’은 ‘분열’의 동의어이다. 즉, 다양성을 억누르는 ‘획일화의 폭력’을 ‘통합’이라는 이름으로 미화시키는 것이다.
둘째, ‘순수성에의 욕망’이다. 여기에서 ‘순수성’이란 통치자가 규정하는 순수성이다. 즉 일방적인 ‘왜곡된 순수성’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점에서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통해서 ‘좌파’ 또는 ‘공산주의’에 물들지 않은 ‘순수성’을 지닌 국민으로 만들겠다는 국정화에 대한 열망은, 유감스럽게도 특정한 관점만을 ‘순수한 것’ 또는 ‘올바른 것’으로 고정시키는 전체주의적 욕망일 뿐이다.
셋째, ‘지식의 지배 욕망’이다. 지식 체계의 지배는 일반 사람들이 사물에 대한 앎의 방식을 제한하고 통제하는 ‘인식론적 폭력’이다. ‘획일성’과 ‘단일성’은 가장 중요한 지식 생산의 표준이 되며, 이러한 ‘획일화된 지식’을 통해서 사람들을 통제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역사 해석의 다양성을 접하는 것은 비판적 성찰을 가능하게 한다. 해석의 다양성을 위험하다고 간주하면서 급기야는 ‘통제의 대상’으로 집어넣는 것은 국민의 의식을 비판적 사유가 부재한 유아기적 단계에 머물게 한다.
국정화 사건을 계기로 우리는 교과서들이 ‘말하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생략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공론화해야 한다. 국수적 민족주의를 넘어서 ‘세계시민’으로서의 개방적 민족주의 또는 초민족주의적 시각, 그리고 근대적이 아닌 탈근대적이고 탈식민주의적 역사관을 가지고 그 동안 ‘생략’되었던 문제들에도 치열하게 개입하여야 한다. 이주노동자, 다문화가정, 인종, 젠더, 성적 지향, 육체적 또는 정신적 장애 등에 근거한 다양한 차별의 문제들은 물론 한국과 세계적 차원에서의 환경문제와 경제적 불균형의 문제 등이 ‘생략’된 역사교과서는 현재와 미래를 포괄적으로 보지 못함으로써 ‘죽은 교과서’가 된다.
현대세계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공존’이다. 국가적 경계를 넘어서서 다양한 사람과의 ‘평화적 공존’을 위한 전제조건은 다양성을 존중하고 포용하는 것이다.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비판적 토론이 가능한 사회가 되기 위하여 국정교과서나 검인정교과서가 아니라 ‘자유발행 교과서’ 제도가 수용되는 것이 21세기의 시대적 요청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첫째, 누구도 역사 해석을 독점해서는 안 된다는 것, 둘째, 관점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만이 성숙한 민주사회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통제된 획일성의 가치를 강요하는 사회에 지금보다 나은 ‘새로운 미래’란 불가능하다.
미국 텍사스크리스천대 브라이트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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