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고개 드는 주택 경기 둔화론
매매거래 2개월 연속 하락세, 분양도 변화 감지
내년부터는 본격 둔화 가능성 대두
서울 강서구에서 사는 회사원 김모(42)씨는 11월 말 아파트 전세 계약이 끝난다. 극심한 전세난, 치솟는 임대료에 지쳐 연립주택이라도 사야하는 건지 몇 달을 고민하다 2년 더 세입자로 남기로 했다. 김씨는 “우리 같은 전세 난민들이 움직이면서 매매수요가 늘고 집값이 많이 올랐는데, 지금이 정점일 것 같다”며 “주택 경기가 식으면 전세든 매매든 지금보단 싼값에 많은 물량이 나올 것 같고 2~3년 후 현재 분양하는 아파트들도 대거 쏟아질 것 같아 기다려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전세품귀현상을 등에 업고 여전히 인기 지역에선 분양 광풍이 불고 있지만 주택 매매거래가 뜨뜻미지근해지는 등 이상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주택 경기 둔화의 변곡점으로 섣불리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일각에서는 전세발 매매 전환의 약발이 조금씩 약해지는 것 아니냐는 진단들이 나온다.
21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주택 매매 거래는 8만6,152건으로 전달(9만4,110건)보다 8.5%, 작년 9월(8만6,689건)에 비해서는 0.6% 감소했다. 3월부터 7월까지 줄곧 10만건 이상의 거래량을 유지하다 8월부터 2개월 연속 하향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올 들어 8개월 연속 ‘역대 최대치’ 매매 거래량 행진을 이어오던 서울 아파트도 세가 꺾였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9월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9,129건으로 전달(1만511건)보다 13.1%나 감소했다. 올 1월부터 8월까지 달마다 역대 최대 기록을 쏟아냈고 3월부터 6개월 연속 매달 1만건을 돌파했던 거래량이 이사철인 9월 들어 꺾인 것이다. 물론 가을 이사철이 본격화하는 이달 들어 일평균 거래량(374.5건)이 지난달(304건)보다 늘긴 했지만 10월의 역대 최대 거래량(1만9,372건ㆍ2006년)에는 크게 못 미칠 전망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주택 거래 신고 기간이 계약일로부터 최대 60일의 시차가 있어 이달에 거래 신고가 집중된 것으로 보인다”며 “연말까지 매매거래가 꾸준하겠지만 이전처럼 매수세가 폭발적으로 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풍만 불던 분양 시장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지난달 청약을 진행한 경기와 인천 아파트 16곳(9,945가구) 가운데 1순위로 마감한 곳은 딱 1곳에 불과했다. 2순위 청약을 하고도 미달된 곳이 전체의 47.1%(8곳)에 달했다. 8월 10곳 중 6곳에서 1순위 청약 마감을 한 것과 대조되는 성적이다. 지방도 분양한 66곳 단지 중 18곳(27.2%)이 미달됐다.
곳곳에서 전과 다른 둔화 움직임이 나오는데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실수요자가 이끌던 주택시장이 동력을 잃어간다는 신호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 전문위원은 “전세난으로 인한 실수요자들의 매매 전환이 부동산 시장을 이끌어 왔기 때문에 앞으로는 거래 시장이 둔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이들이 올 초부터 적극적으로 움직이면서 주택 가격이 오를 대로 올랐고, 상당수 세입자들이 전세 대출을 받은 상태에서 지금처럼 집값이 오른 와중에 매매를 위해 추가 대출을 받기가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내년 이후 강화되는 대출규제와 분양 시장의 과잉공급 우려, 그리고 치솟을 대로 치솟은 고분양가도 매매시장을 위축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내년부터 장기간 원금은 갚지 않고 이자만 내는 주택담보대출은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소득 심사 시 제출할 수 있는 소득 증명 자료를 제한하는 등 대출 심사 조건을 강화하기로 했다.
분양 물량 역시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 들어서만 40만 가구가 넘을 것(40만8,981가구)으로 전망되면서 1~2년 후 입주대란이 일어날 것이란 우려가 많다.
전문가들은 그래도 올 연말까지는 지금의 매매 거래 수준이 크게 급감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본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내년 담보대출 조건이 강화되기 때문에 그나마 집 구매를 원하는 사람들은 연내 저리 고정금리로 받으려 할 것”이라며 “이런 수요와 더불어 가을 이사성수기라는 계절적 요인이 맞물려 연말까지는 거래량이 급하게 하락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진짜 문제는 내년부터다. 과잉공급으로 주택시장이 몸살을 앓던 2010년 상황보다 사정이 더 좋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들이 나온다. 실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건설사 중에는 스스로 분양가를 대폭 낮추는 조치를 취한 곳도 있다. 대림산업은 이번달 23일 분양에 들어가는 ‘e편한세상 용인 한숲시티’의 분양가를 평균 3.3㎡당 799만원으로 책정했다. 이는 10년전 경기도의 평균 분양가(3.3㎡당 859만원)보다 더 낮은 수준이고 주변 시세보다도 30% 넘게 싼 가격이다. 대림산업 관계자는 “6,725가구를 한꺼번에 분양할 계획인데 미분양 사태를 막기 위해 분양가를 파격적으로 낮췄다”고 말했다.
강중구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 경제의 장기성장 둔화에 대한 우려로 주택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공급부족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내년 이후 주택경기의 활력도 약화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강아름기자 sara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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