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개를 한 마리 입양했다. 개가 지나간 자리 똥오줌도 받아내고 강아지님이 끙끙대면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수발을 들고 있다. 개의 앞발을 손 위에 올려두면 기분이 묘하다. 가만히 개가 나를 쳐다보면 또 기분이 묘하다. 까맣고 촉촉한 코에 검은 구슬 같은 눈동자 위론 내 얼굴이 비친다. 아직 2개월뿐이 안 된 새끼라서 발바닥도 보송보송하고. 작고 약한 생명의 느낌이 가슴에 와 닿는다. 요즘은 집에 돌아오면 온기가 있어 좋다. 누군가 반갑게 나를 맞아주고 날 필요로 한다는 게 참 기쁜 일이다.
개를 키울지 말지를 놓고 2주일간 고민했다. 키우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내가 얼마나, 그리고 가족들이 나를, 혹은 다른 생명체를 위해 쓸 시간이 있는지 계산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나를 돌볼 시간은 물론이고 남을 돌볼 시간도 내기 힘들고, 개를 돌볼 시간은 더더욱 없는 것 같았다. 관성처럼 살았는데 누군가를 돌볼 시간을 막상 계산해보니, 그랬다. 그래도 가족과 함께 사는 집이니 번갈아 집에서 개를 돌볼 수 있다. 1인 가구로서 반려동물을 입양하면 이런 시간 빈곤의 문제는 훨씬 클 것이다.
나는 혼자 살면서 동물을 키울 생각은 없다.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개나 고양이를 입양 받아 외롭게 버려둔다고 하면, 집에 사육하는 일밖에 못 된다. 개한테도 사람한테도 못할 짓이다. 인간이 짧은 시간 위로 받기 위해 반려동물을 입양한다면 그 반려동물은 그 잠깐을 위해 하루 종일 외로워야 한다.
도시에 버려진 동물들은 무책임한 외로움의 증거 같다. 농림축산식품부 통계에 따르면 경제적 이유, 변심 등으로 버려지는 반려동물이 한 해 10만 마리에 육박한다. 2014년엔 8만1000여 마리, 2013년엔 9만7000여 마리, 지난해 서울에서 버려진 유기동물만 해도 9551마리였다. 개를 버리는 이유야 각양각색이지만 인간이 개를 돌볼 수 없어 일어나는 일이 가장 많다.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고, 진짜 ‘반려’동물이 될 수 있도록 길들여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다. 외로워서 입양하고, 책임지지 못해 동물을 버린다. 그렇게 골목마다 털이 엉킨 개들과 추운 날 자동차 밑으로 숨어드는 길고양이가 늘어난다.
하루 종일 외로운, 제 한 몸 챙기기도 힘든 인간의 삶도 녹록치는 않은 것 같다. 이것은 시간 빈곤의 문제이기도 하다. 반려동물을 씻기고 먹이지 못할 만큼 시간이 없다면, 그건 인간이 스스로를 씻기고 먹이고 쉬게 하는 일에도 문제가 있는 삶일 것이다. 미국 작가 브리짓 슐트는 <타임푸어>라는 책에서 시간 빈곤층에 대해 이야기했다. 시간 빈곤층이란 1주일(168시간) 중 하루 평균 여가시간이 2시간도 채 되지 않는 사람이다. 노동, 출퇴근, 가사 등을 이유로 먹고 자고 씻는 인간의 삶을 유지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올해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한국 임금노동자 중 시간빈곤층은 930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자기를 돌볼 여력도 없는 사람들. 길에 버려진 개와 고양이를 보면 각박한 각자의 생활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각박한 생활은 사람을 궁지로 몬다. 다들 자기의 불편만 중하고, 다른 생명은 안중에 없다. 올해 9월, 서울 마포구 일대에서 길고양이가 연이어 죽어나가는 일이 생겼다. 동물보호 관계자들은 ‘인간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누군가가 음식에 독극물을 넣어 길에 뿌려두었다는 추측이다. 얼마 전에는 경기도 용인의 한 아파트에서 길고양이 집을 만들어주던 50대 여성이 옥상에서 초등학생들이 던진 벽돌에 맞아 숨졌다. 언론에서는 이 사건을 ‘캣맘’ 사건으로 불렀다. 이 여성에게 벽돌을 던진 용의자를 추적하는 논의에서 “동네 캣맘이 길고양이를 돌봐서 얼마나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가 되는지”를 이야기한 사람들이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겠지만, 끔찍한 이야기들이었다. ‘민폐’란 말이 많은 것을 억누르고 배제하는 걸 정당화하는 사회에, 우리가 지금 살고 있다.
(☞관련기사 '동물공포증 원인은 어디서부터' 보기)
이런 분노는 어디서부터 시작한 걸까. 사람들은 자기의 사소한 불편을 이유로 다들 두리번거리며 화낼 곳을 찾고 있는 것 같다. 버려진 동물에게 뿐만 아니라 인간이 살기에도 이 도시는 그렇게 멋진 곳은 아니다. 백화점 직원을 무릎 꿇게 하는 갑질도, 길고양이를 숨지게 하는 거리의 음식도, 사실은 모두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가 견디기 힘든 삶을 살고 있다고.
칼럼니스트
썸머 '어슬렁, 청춘' ▶ 시리즈 모아보기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