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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397m의 ‘꼬마’ 지리산 “니 내 쪼매나다 무시했제?”

입력
2015.10.2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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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정상에서 바라본 남해 앞바다. /2015-10-24(한국일보)
지리산 정상에서 바라본 남해 앞바다. /2015-10-24(한국일보)

통영 사량도에 자리 잡은 이 나지막한 산을 얕봤다가는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별 생각 없이 올랐다가 산중턱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주저앉아 울었다는 등산객이 여럿이란다. 믿거나 말거나, 요 조그만 산을 타는 맛이 꼭 '땡추'처럼 맵다는 건 사실이다.

'지리망산'또는 '지리산'이라고 불리는 이 산은 날씨가 좋은 날에는 경남 하동의 지리산을 조망할 수 있다고 해서 지리망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언제부턴가 지리산으로 슬쩍 이름을 바꿨는데, 이름만 똑 같을 뿐이지 그 산세와 성격은 영 딴판이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이 어머니의 품과 같다면 사량도의 지리산은 척추를 곤두세운 성난 고양이와 같다. 등산객 입장에서는 그만큼 사납고 얄밉기까지 한 산이다.

지리산-불모산-옥녀봉 완주 코스 /2015-10-24(한국일보)
지리산-불모산-옥녀봉 완주 코스 /2015-10-24(한국일보)

지리산을 즐기는 루트는 다양하지만 고양이 척추뼈처럼 솟아오른 산줄기를 따라 섬 전체를 종주하는 것이 가장 긴 코스다. 사량도 여객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터미널 반대편의 돈지 마을로 가서 산행을 시작하면 된다. 돈지에서 지리산-촛대봉-불모산-옥녀봉을 거쳐 다시 터미널로 돌아오는 코스가 8km에 달하는데, 총 4~5시간 정도 소요된다.

바닷가에서 지리산을 올려다보면 그저 야트막한 산처럼 보인다. 난이도가 썩 높아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산의 능선 대부분이 속살이 허옇게 드러난 바위 구간이다. 그것도 편편하고 두툼한 바위가 아니라 꼭 생선 비늘처럼 짝짝 쪼개져 있어 발 디디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산줄기의 폭이 1m가 채 되지 않는 구간마저도 걸어서 통과해야 하는데, 탐방로 양쪽 모두 천길 낭떠러지라 도대체 한눈을 팔 새가 없다.

독특한 모양의 지리산 바위./2015-10-24(한국일보)
독특한 모양의 지리산 바위./2015-10-24(한국일보)
길 없이 낭떠러지의 빗면을 타야 하는 구간도 많다. /2015-10-24(한국일보)
길 없이 낭떠러지의 빗면을 타야 하는 구간도 많다. /2015-10-24(한국일보)

지친 몸으로 지리산과 불모산을 넘고 나면 옥녀봉이 기다리고 있다. 욕정에 눈이 먼 아버지를 피해 낭떠러지로 몸을 던졌다는 옥녀의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옥녀의 한이 봉우리에 서려있는 탓일까. 바위 곳곳이 거의 유격훈련장을 방불케 한다. 출렁다리, 밧줄, 수직계단 등 아찔한 위험구간을 넘어가기 위한 안전시설이 종합선물세트처럼 준비되어 있다.

바위 표면에 설치된 수직계단. 이름만 계단이지 사실상 사다리에 가깝다. /2015-10-24(한국일보)
바위 표면에 설치된 수직계단. 이름만 계단이지 사실상 사다리에 가깝다. /2015-10-24(한국일보)

2013년도에는 옥녀봉의 바위와 바위 사이를 연결하는 출렁다리 2개가 만들어졌다. 이전에는 우회로를 이용하거나, 직접 밧줄을 타고 옥녀봉을 넘어갔지만 산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등산객의 안전 사고를 줄이기 위해 고안한 방법이 출렁다리다. 2004년부터 옥녀봉 전국등반축제를 시작하면서 이제는 연간 35만명의 관광객이 사량도를 찾고 있다. 등산 마니아들 사이에는 두 발로 옥녀봉을 넘으면서 느꼈던 짜릿함을 그리워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곳은 스릴과 전율을 맛보기에 충분한 곳이다.

옥녀봉 출렁다리. 사방이 탁 트인 조경 덕에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 든다./2015-10-24(한국일보)
옥녀봉 출렁다리. 사방이 탁 트인 조경 덕에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 든다./2015-10-24(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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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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