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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칼럼] 언어가 정신을 만든다

입력
2015.10.24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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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즈음이 되자 오늘날 청소년과 젊은 층에서 보이는 새로운 언어습관에 대한 다양한 우려의 목소리들이 나왔다. 한국일보 9월 19일자 기사(▶기사보기)에 의하면 문제의 원인은 채팅과 메시지 등 빠른 시간 안에 자판을 두드려 소통하는 문자 문화가 제공했다. 그 결과가 무분별한 줄임말과 합성어, 은어, 맞춤법 무시 등 언어파괴로 나타났다.

지난 7월 국민대통합위원회가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그 가운데 요즈음 청소년들의 언어습관에 대해 우려하는 점으로 ‘개인 인격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가 31.0%로 가장 많았다. ‘올바른 한글을 익히기 어렵다’가 28.9%, ‘다른 세대와 소통이 되지 않는다’가 18.4%, ‘해당 언어를 모르는 계층과 괴리감이 생긴다’가 16.1%, ‘우려되는 점이 없다’가 3.6%, ‘무응답’이 2.0%로 뒤를 이었다.

일반인들의 우려가 크다는 뜻이다. 이에 비해 일부 중ㆍ고교 국어교사나 대학 국어국문과 교수와 같은 전문가들은 이 문제에 대해 비교적 관대하다. “청소년들이 예민한 언어감각으로 새로운 소통방식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큰 문제라 볼 필요는 없다”는 식이다. 그렇다! 시대를 불문하고 “파생과 합성을 통해 새로운 말을 만들어 내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데 간과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언어가 정신을 만든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무슨 소리냐고?

20세기가 낳은 교육심리학의 대가인 피아제, 비고츠키, 특히 루리야의 광범위한 실험에 의하면 시간 관념이 없는 어린아이는 ‘언제’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장소 관념이 없는 아이는 ‘어디서’라는 표현을 하지 못하며, 인과 관념이 없는 아이는 ‘왜’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후 자라나면서 이런 관념들이 생겨나면 언제, 어디서, 왜라는 표현들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때 아이들이 ‘경험을 통해서’가 아니라 ‘언어를 통해서’ 그런 능력들을 획득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동물들 가운데 언어능력이 전혀 없는 종에게는 시간 관념, 장소 관념, 인과 관념 역시 없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21세기 뇌과학자들이 밝혀낸 바에 의하면 언어, 더 자세히 말하자면 말이나 글 안에 들어 있는 문장의 구조가 ‘자연과 사물의 질서에 합당한 정신의 모형’을 우리의 뇌에 구성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라는 육하원칙(5W1H)은 단순히 보도문을 쓰는 지침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가 오랜 세월 동안 말하기와 글쓰기를 하면서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 ‘자연과 사물의 질서’를 표현하는 데에 최적화된 문장의 필수 구성요소다.

육하원칙에는 누가, 무엇을 이라는 주체와 객체 관념, 언제, 어디서라는 시간과 장소 관념, 왜라는 인과 관념과 어떻게라는 수단 관념이 들어있다. 워싱턴대의 신경생리학자 윌리엄 캘빈이 육하원칙을 ‘정신적 문법’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 그래서다. 따라서 어떤 아이가 육하원칙에 합당한 문장을 구사한다면, 그 아이의 뇌가 이미 자연과 사물의 질서에 합당하게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아이가 국어뿐 아니라 과학과 수학, 사회 공부도 잘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이 문장이 가진 비밀스러운 힘이다.

정말이냐고? 고개가 갸웃해진다면 예를 하나 들자.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독일의 현상학자 후설의 ‘기하학의 기원’이라는 글에 본문보다 더 긴 서문을 쓴 적이 있다. 그에게 카바이예 상을 안겨준 이 글의 요점은 기하학의 기원이 문장이라는 내용이다. 고대 그리스에 기하학이 발달한 시기도 그들의 언어에 정확하고 논리적인 문장의 구조가 형성된 이후부터였다. 올바른 문장은 우리의 모든 이성적 사고들이 제 길을 찾아가게끔 하는 ‘정신의 지도’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정신의 문법이자 지도인 문장을 익히는 데 가장 효율적일까? 답은 간단하다. 어릴 때부터 올바른 문장을 사용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다. 언어가 파괴되면 정신이 파괴된다. 이것이 오늘날 청소년과 젊은이들의 ‘언어파괴적 언어 습관’이 심히 염려스러운 이유다.

김용규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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