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제작과정 투명하게" 달리
국사편찬위, 집필진 공개 머뭇
심의·수정 위원도 비공개 가능성
교육부 '밀실 수정' 전례 불신 더해
한국사 교과서 국정 전환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아지는 가운데 교육부가 집필진 공개할지에 대해 입장을 명확히 하지 않고 있어‘밀실 편찬’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교육부는 “큰 틀에서 집필진을 공개하겠다”면서도 “당사자가 거부하면 어쩔 수 없다”며 사실상 공개에 소극적인 자세다. 교육부는 지난 12일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공식 발표하면서“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진행하겠다”고 밝혔었다.
실무를 맡은 국사편찬위원회측은 이미 비공개 방침을 내비췄다. 25일 국사편찬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역사교과서 집필진 공개는 아직까지 최종 결정된 바 없다”면서도 “거센 반대 여론과 집필진의 부담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3일 국회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집필진이 구성되면 의견을 물어서 결정할 것”이라고 답했던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의 발언과 같은 맥락이다. 집필진이 거부할 경우 비공개 하겠다는 뜻이다. 지난 18일 언론 인터뷰에서 황우여 장관이 “교과서 만드는 과정을 공개해 나가려고 한다”고 밝혔지만, 약 1주일 만에 집필 전담 기관에서는 비공개방침을 시사한 것이다.
교육부 안팎에서는‘중등교과서 국ㆍ검ㆍ인정 고시’가 확정되는 다음달 5일을 전후 해 교육부의 교과서 필진 공개 의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교육부가 필진의 거부를 이유로 명단을 공개하지 않을 경우 내용의 편향성은 물론 부실한 교과서가 될 수 있다는 논란은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집필진 구성→집필→심의ㆍ수정→검수→현장보급’에 이르는 제작과정 전 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하겠다는 교육부의 공언도 허언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정부가 현실적으로 뉴라이트 인사 등 제한된 필자들로만 구성할 수 밖에 없어 (여론의) 눈치를 보는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며 “이후 심의ㆍ수정과정을 맡게 될 편찬심의위원회 위원 명단도 공개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같은 우려는 과거 정부가 교과서 관련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폐쇄적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교육부가 금성교과서에 대해 ‘좌편향’이라며 수정명령을 내리자 집필자들이 반발해 소송을 제기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교육부는 법적 근거가 없는 ‘역사교과서전문가협의회’란 조직을 꾸려 검토 후 근현대사 부분에 대해 중점적인 수정을 지시했다. 집필자들은 지속적으로 위원 명단의 공개를 요구했지만 이를 묵살했고, 교육부는 결국 2013년 법원이 “정식 심의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원고승소 판결과 동시에 위원명단을 공개하도록 한 뒤에야 명단을 공개했다. 이 과정에서 협의회에 참석한 11명 중 근대사 전공자가 2명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교육부는 객관성과 공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2013년 교육부가 내린 교과서 수정명령에 불복해 7종 검인정교과서 저자들이 소송을 제기한 사건 역시 비슷하다. 지난 해 공개된‘수정심의회’위원에는 뉴라이트 대안교과서에 추천글을 쓴 이훈상 동아대 교수와 보수 성향 학부모단체 대표가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당시 교육부는 수정심의회를 꾸리기 위해 시ㆍ도교육청, 교육단체, 대학 등에 추천 공문을 보냈지만 역사관련 학회들에게는 공문을 보내지 않아 논란을 키우기도 했다. 대부분의 역사관련 학회들이 진보성향이라는 데 부담을 느꼈다는 해석이 나왔었다.
교육부는 “큰 틀에서 국정교과서 집필자 명단을 공개할 방침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간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과정에서 정부의 오락가락 대응을 고려하면 이는 말장난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방은희 역사정의실천연대 사무국장은 “기한을 정해 놓고 국정화를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정부와 산하기관끼리도 입장조율이 안되는 상황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며 “정부 스스로 국정화의 명분과 절차적 정당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면 공개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현수기자 ddacku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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