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문화 내지는 사이버 공간에서, 트롤(troll)이란 정해진 주제에서 벗어난 내용이나 다른 사람의 화를 부추기고 감정을 상하게 만드는 내용을 일부러 공격적으로 올림으로써 판을 어지럽히는 사람을 가리킨다.
원래 트롤은 스칸디나비아와 스코틀랜드 신화 및 민담에 나오는 심술쟁이 요괴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요괴로서의 트롤은 사람들이 모두 잠든 밤에 나타나서 마을을 서투른 걸음으로 배회하며, 단어 몇 개로만 이루어진 소리를 내며 말한다.
이러한 습성으로부터 ‘트롤’은 동사로도 쓰이게 되었는데, 뚜렷한 목적 없이 여기저기 걸어다니는 것, 또는 터덜터덜 구르듯이 쏘다니는 것, 더 나아가서 같은 일을 반복하거나 돌림 노래를 부르는 것을 가리켰다. 좀 더 나중에는, 소리가 비슷한 저인망 어업(trawl)과 혼동되면서 사람을 미끼로 낚거나 홀리는 것까지를 뜻하게 되었다.
트롤링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트롤’을 한국식 영어로 ‘트롤러’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예술가를 아티스터(artister)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인터넷 트롤링을 일본에서는 아라시(荒らし)라고 하며, 트롤을 중국어로는 바이무(白目) 혹은 사오바이(小白)라고 부른다. 아라시란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을 뜻하는 데에서 나왔고 바이무란 눈동자가 없이 흰자위만 있는 사람, 즉 말도 안되는 얘기를 맹목적으로 늘어놓는 사람을 뜻한다.
한국어 위키 웹사이트인 ‘나무위키’에는 트롤링의 유형에 관해서 다음과 같은 항목들을 나열하고 있다: 어그로, 악성 떡밥, 일부러 헛소리 하기, 염장질, 스포일러, 말투. 더 나아가 나무위키에 의하면 트롤링은 낚시질이나 놀리기의 뜻으로도 쓰이며, 또 ‘리그 오브 레전드’와 같은 게임에서는 본래 뜻에서 상당히 벗어나서 그저 게임을 못하는 사람을 가리킬 때에조차 트롤이란 말을 쓴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중에서 특히 ‘어그레시브’의 줄임말인 ‘어그로’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같은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적(몬스터)으로부터 받게 되는 위협 수준을 가리키는 용어에서 생겨났다. 플레이어가 유달리 공격적이거나 도발적인 경우, 그러할수록 게임 안의 적으로부터 받게 되는 위협도 더 커지게끔 설계되고 시행되는 시스템 속성에서 생겨난 것이다.
많은 젊은 한국어 화자들은 ‘어그로’에 대해서 ‘끈다’는 동사를 붙여 사용한다. ‘쏜다(한턱 낸다)’ ‘까인다(비난이나 비판을 받는다)’ ‘발린다(비난이나 비판을 받아서 무너진다)’ 등에서와 같이 ‘어그로를 끈다’는 표현은 젊은 세대의 감각적이고도 직관적인 동사 사용법을 보여준다.
요즘 ‘어그로를 끈다’는 말은 사이버 공간에서가 아닌 실제 공간에서도 쓰인다. 특별한 이유나 근거 없이 다른 사람에게 시비를 걸어 도발함으로써 기분을 나쁘게 하는 일을 가리켜서 ‘어그로를 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하면,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고집하는 일도 국민들 전부를 대상으로 삼아서 정치적이고도 역사적인 어그로를 끄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수의 국민들이 반대하고 있는데도 왜 국정화를 강행하려는 것일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답은 박근혜 대통령이 그것을 스스로의 역사적 소명이자 정치적 과제로 삼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시기도 딱 지금이다. 선거가 있는 내년 봄부터는 역사 교과서를 가지고 국민들의 어그로를 끌 수는 없다.
사이버 공간에서 트롤을 퇴치하는 가장 효율적인 길은 무시해버리는 것이다. 물론, 분명하게도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우리가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내 경우 이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도 보고 있다. 즉, 그러한 정치적 어그로에 의해 도발되어 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만은 아닐 거라는 얘기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그것 자체만큼이나 중요한 다른 문제를 은폐하고 억압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 박근혜정부는 개혁을 빙자해서 ‘노동에 대한 공격’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바로 그런 심층적 배경 때문에 국정화에 반대하던 보수 언론들이 갑자기 찬성으로 홱 돌아서게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흔히들 오해하는 것과는 달리, 박 대통령은 머리가 나쁘지 않다.
이재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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