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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역사전쟁’ 불길에 기름 부은 시정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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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역사전쟁’ 불길에 기름 부은 시정연설

입력
2015.10.27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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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연한 표정으로 국정화 의지 강조

야당과 국민을 상대로 싸워 뭘 얻나

‘올바른 역사’는 대개 독선에 가깝다

박근혜 대통령의 27일 국회 시정연설에 가슴이 답답해진 국민이 적지 않았을 듯하다. 연설 막바지에 힘주어 다짐한 국사 교과서 국정화 의지 때문이다. 일말의 기대가 물거품이 되었고, 박 대통령의 불통(不通) 이미지는 더욱 굳어졌다.

이날 연설의 대부분을 차지한 4대 국정 개혁과 경제회생, 청년 일자리 창출 등에 대한 차분한 설명과 온화한 표정은 박 대통령이 앞장서서 정착시켜온 연례 정치행사의 지향점이 국회, 나아가 국민과의 소통임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했다. 자주 ‘경제’ ‘정년’ ‘개혁’ ‘일자리’ 등 핵심어를 언급하면서도 특별히 목소리를 높이거나 상기된 표정을 짓지 않았다. 진지하면서도 여유로웠다. 그런데 ‘역사교육 정상화’에 언급하면서 표정과 태도가 바뀌었다. 싸늘하게 굳은 표정은 “지혜와 힘을 모아줄 것”을 국민에게 당부하면서도 풀리지 않았다. 국사교과서 국정화 의지의 결연함을 과시하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른다. 또 정부와 국정화 의지를 공유해온 여당에게도 격려가 됐을 만하다.

그러나 새해 예산안과 무관한 국정화 문제를 시정연설의 핵심으로 삼아야 했던 배경에 비추어 이날 연설은 국회ㆍ국민과의 소통과는 아득히 동떨어졌다. 애초에 이 문제를 두고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국민의 이해와 협조를 요청하게 된 것은 그만큼 반대 여론이 무성했기 때문이다. 다수 국민이 정부의 국정화 방침에 반대 의사를 밝힌 것은 물론이고, 극소수를 빼고 보수ㆍ진보 성향을 막론한 역사학계 다수 학자들이 미리 집필거부를 선언했다. 야당의 반대도 확고해 시민단체와 연대한 장외투쟁까지 시작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한 설득 시도라면, 최소한 반대 주장의 타당성에 대한 부분적 수긍이라도 보여 마땅했다. 이날 연설에는 일절 그런 내용이 없었다.

우리는 박 대통령이 강조했듯, 미래 세대가 한국민으로서의 일정한 자긍심을 가지는 게 바람직하며, 한국이 해방 이래 민주화와 산업화에 성공한 자랑스러운 나라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또한 현행 교과서에 일부 편향된 역사인식이 담겼다면, 미래세대의 균형 잡힌 역사인식을 위해 바로잡을 필요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 방법이 왜 퇴행적 국정화뿐인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아울러 ‘균형 잡힌 역사인식’과 특정 정파가 내세우는 ‘올바른 역사인식’은 분명히 다르다. 이 때문에 야당과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데도 정부ㆍ여당이 강행 자세를 보여온 국정화의 논리적 근거인 ‘역사 바로잡기’ 내지 ‘올바른 역사인식’은 균형감각보다 독선에 가깝다고 보아왔다. 야당과 국민을 비난과 설득 대상으로만 여기고 있음을 보여준 박 대통령의 이날 연설은 그런 짐작만 더욱 분명하게 했다. 우리는 역사를 바로잡아 국민 정체성에 자긍심을 보태려는 박 대통령과 정부의 뜻이 궁극적으로 국민통합과 화해를 겨냥한 것이라고 믿었다. 국민통합은커녕 국민 분열만 자극하는 국정화에 매달리는 대통령과 정부의 모습이 그래서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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