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역사교과서는 국가의 의도에 따라 진실되지 않은 편향된 기억을 국민에게 주입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는 정책입니다.”
세계적인 교육학자 마이클 애플(73) 미국 위스콘신대 석좌교수는 27일 서울시교육청에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대담을 갖고 국정 교과서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애플 교수는 저서 ‘교육과 이데올로기(Ideology and Curriculum)’가 ‘지난 100년 동안 교육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세계적인 책’ 20권에 오른 석학이다.
애플 교수는 이날 대담에서 “장차 한국 사회에 심대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국정 교과서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권력층이 그들이 보여지고 싶은 대로, 의도하는 대로 역사에 대한 기억을 재해석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애플 교수는 “역사에 대한 해석은 한국뿐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도 지속적인 논쟁거리”라며 “이는 역사에 대한 집단적 기억이 개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권력자는 자신이 의도하는 대로 구성원의 정체성을 만들기 위해 역사를 그들이 보여주고 싶은 대로 재해석하려고 한다”며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국정 교과서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조 교육감도 “국정 교과서 정책은 국가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우익적 시각을 주입하는 ‘신권위주의 정책’이자 ‘자폐적 민족주의’”라고 지적했다.
애플 교수는 국정 교과서 도입이 사회에 끼칠 영향에 대해서도 깊이 우려했다. 그는 “국정 교과서가 도입되면 교사들은 점차 수업에 대한 자율성을 빼앗기게 된다”며 “권력과 지식의 연계가 가져온 획일적인 수업 모델이 한 번 정해지면 교사들은 교실에서 창의성과 자율성을 잃게 되고 그렇게 한 번 만들어진 분위기를 되돌리기는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조 교육감도 “국정교과서는 교육 과정에 권력이 개입해 특정한 상식과 세계관을 강요하려는 것”이라며 “이는 결과적으로 역사에 대한 우익적 재해석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이번이 세 번째 방한인 애플 교수는 전날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참사 농성장과 청계광장 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촉구 농성장을 방문해 한국 사회 현안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애플 교수는 1989년 첫 방한 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지지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에 연금된 적도 있다.
김민정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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