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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한중일 외교를 첫 단추로

입력
2015.10.30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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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뚜렷한 한중일, 한일 회담

미중 패권싸움에 존재감 잃어

다자외교 출발점 만들면 성공

이상한 회담임에는 틀림없다. 정상회담이라면 최소한 공동의 가치와 현안에 대한 성과가 전제돼야 하는데, 이번 한중일 정상회의나 한일 정상회담은 그런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2012년 5월 베이징에서의 한중일 및 한일 회담 이후 3년6개월 동안 무엇을 했는지 허망하기만 하다. 3국이 얼굴을 맞댈 수 있는 것은 그나마 미국의 압박이 컸다고 밖에 할 수 없다.

한중일 정상회의 성사 발표가 ‘중국경사론’을 증폭시켰던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방문에서였고, 한일 회담은 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길에 확정됐다. 미국 덕분에 서로 얼굴이라도 보게 된 것을 성과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편으로는 미국에 끌려가다시피 한 측면이 회담을 이상한 모양으로 몰고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한일 간에는 독도 영유권, 과거사, 일본의 안보팽창 등의 문제가 있고, 중일 간에도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과거사, 미국의 아시아재균형 전략 등의 현안이 걸려있다. 입장이 비슷한 한중이 일본에 전향적 자세를 요구하는 모습을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한미일 3각 공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가 중국과 같은 판을 벌일 수는 없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는 미국에게서 선택을 강요 받는 상황이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한미, 한중관계는 양립 가능하다”면서도 “중국이 국제규범 준수에 실패한다면 한국도 미국처럼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했던 발언의 의중이 어디 있는지는 두말 할 필요도 없다. 미국이 중국을 협력호혜의 관계로 보는 것은 어디까지나 중국이 미국 패권에 도전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타결 성명에서 “중국 같은 나라가 세계경제규칙을 쓰게 허락할 수 없다”고 한 오바마 대통령의 성명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리가 전전긍긍하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의 운명도 실은 미국이 중국의 도전을 얼마나 심각하게 보느냐에 따라 결정될 게 분명하다.

남중국해에서 터진 미국과 중국의 일촉즉발의 군사대치 상황은 이런 딜레마가 먼 얘기가 아님을 상기시킨다. 한중일, 한일 회담을 코 앞에 둔 시점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미국의 구축함 파견을 “국제법을 기준으로 한 행동”이라고 노골적으로 미국 편을 드는가 하면 남중국해에서 미군과 연합훈련도 할 수 있다는 기세다. 한중이 회담에서 일본에 어떤 자세를 보이느냐에 따라 일본이 남중국해 문제로 역공을 취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남중국해 문제가 이번 회담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자체가 한중일 3각 토대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보여준다. 최악의 경우 일본이 미국을 대리해 중국과 싸우고 의장국인 한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실체 없는 중국경사론과는 차원이 다르다.

아베 총리는 한일 회담이 확정된 후 위안부 문제에 대해 “박 대통령과 솔직하게 의견교환을 하고 싶다”고 했다. 위안부 문제의 진전을 전제조건처럼 내건 우리에게 “조건 없는 회담”만을 되뇌었던 것에 비춰보면 뭔가 달라진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감도 갖게 한다. 그러나 우리 입맛에 맞는 해결책을 내놓으리라는 것은 기대난망이다. 미중 패권싸움에 휩쓸려 존재감을 잃은 한중일 정상회의 역시 마찬가지다.

이번 회담이 의미를 가지려면 역설적으로 회담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는 게 먼저다. 신뢰가 없는데 무리하게 결과물에 집착하다가는 역효과만 낼 수 있다. 서로 뒤에서 뒷담화하고 깎아 내리는 경쟁만 할 게 아니라 아베 총리의 말대로 속내를 터놓고 얘기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성과다. 언제 또 깨질 지 모르는 한중일 회의를 정례화하는 길도 거기서 찾아야 한다.

박 대통령은 미국 방문에서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더 나아가 한미중 3자협력도 새롭게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옳은 지적이다. 그것이 한국 외교가 살 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중일 외교를 끌고 갈 수 있는 역량을 먼저 보여줘야 한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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