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따뜻한 가슴으로 성행위를 하고 여자가 따뜻한 가슴으로 그것을 받아들인다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잘 되리라고 난 믿고 있소. 차디찬 가슴으로 하는 그 모든 성행위야말로 바로 백치 같은 어리석음과 죽음을 낳는 근원인 것이오.”
D.H 로렌스의 소설 ‘채털리 부인의 연인(Lady Chatterley’s Lover)’(이인규 옮김, 민음사)의 산지기 올리버 멜러스가 ‘채털리 부인’콘스턴스(코니)에게 약 100년 전에 한 말이다. 남자가 “하고” 여자가 “받아들인다”는 표현이 21세기 독자들에겐 불편할지 모르지만 저 때가 1920년대 말이다. 교육 혜택을 못 누린 영국 하층민(산지기)의 말치곤 너무 근사해서 어색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육체ㆍ성의 해방과 신분ㆍ계급 해방의 두 가치를 말 한 마디에 담으려다 보니 그랬으리라.
소설은 1차대전 부상으로 성불구자가 된 남편 클리포드 채털리의 눈을 피해 코니가 하인 맬러스와 바람 난 이야기다. 설정도 도발적이지만 더 문제가 된 건 바람의 ‘양상’이었다. 로렌스는 당시 독자들로선 파격적이었을(하지만 대다수가 행했을) 육체적 탐닉과 희열을 적나라하고 치밀하게 묘사했다. 그도 모자라 하인이 상전을 가르쳤다. “성은 모든 접촉 중에서 가장 밀접한 유일한 접촉이오. 그리고 우리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접촉이지요. 우리들은 반쯤 의식하고 반만 살아 있는 셈입니다. 우리들은 생기를 띠고 또렷이 이해해야 해요. 특히 영국인들은 서로 조금은 섬세하고 부드럽게 접촉해야만 하지요. 이것이 우리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하답니다.” 주류 사회가 문제 삼은 것은 ‘외설’이었지만, 어쩌면 저 ‘질서’의 전복이 더 찜찜했을지 모른다.
출판을 거부당한 로렌스는 28년 6월 이탈리아에서 자비로 책을 낸다. 32년 영국서도 출판되지만 성애 장면은 모조리 삭제된 뒤였다. 미국 크노프판도 마찬가지였다.
이후 30년 동안 이어진 외설 논란은 작가 사후인 1960년 펭귄사가 무삭제판을 출간하면서 소송으로 비화했다. ‘외설출판법(Obscene Publications Act)’이 제정된 게 불과 한 해 전이었다. 수많은 작가와 비평가들, 예컨대 E.M 포스터, 헬렌 가드너, 레이먼드 윌리엄스 등이 증인ㆍ참고인으로 법정에 섰다. 법원은 그 해 11월 2일(오늘) 출판 무죄를 선고한다. 재판부는 “외설 표현이 책의 나머지 부분을 침수시킬 정도로 압도적이지 않다면 외설적이라고 할 수 없다(침수이론)”고 밝혔다. 61년 재판(再版)을 내며 출판사는 “영국 독자들이 로렌스의 마지막 작품을 읽을 수 있게 해준 배심원 12명(여성 3명)에게 바친다”는 헌사를 달았다.
‘채털리의 부인의 연인’은 55년 마크 알레그레 감독이 프랑스에서 처음 영화화했고, 81년 실비아 크리스텔 주연의 쥐스트 자캥 영화(사진)가 큰 인기를 끌었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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