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현지시간) 치러진 터키 총선에서 집권 정의개발당(AKP)이 예상을 뒤엎고 압승해 단독 정부 구성에 성공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6월 총선에서 과반확보에 실패한 직후 쿠르드 반군과 진행중인 휴전협상을 깨고 전쟁을 재개한 후 유혈사태가 이어지자 불안감을 느낀 보수계층이 결집한 결과다.
그러나 이번 총선을 발판으로 대통령제 개헌을 추진해 장기집권을 노리고 있는 에르도안 대통령에게는 ‘미완의 승리’다. 의회의 개헌 국민투표 발의는 의원 330명의 찬성을 받아야 하는데 AKP은 이번 선거에서 316석을 얻어 개헌 발의 의석에는 14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파이낸셜타임스는 “330석 이상을 확보했더라면 대통령제 개헌을 손쉽게 이룰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도 “단순 과반 달성만으로 에르도안 대통령의 힘은 훨씬 커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날 터키 관영 아나돌루 통신 등에 따르면 개표율 98% 기준으로 AKP가 득표율 49.4% 기록했지만, 터키 특유의 비례대표제 방식에 따라 전체 의석의 과반인 275석을 훌쩍 넘는 316석을 차지했다. 이어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공화인민당(CHP) 134석(25.4%), 쿠르드계 인민민주당(HDP) 59석(10.6%), 극우성향의 민족주의행동당(MHP) 41석(11.9%), 순이다. AKP는 지난 6월 총선에서 득표율 258석(40.7%)에 그쳤었다.
AKP 대표 아흐메트 다부토울루 총리는 이날 승리 수락 연설을 통해 “우리만의 승리가 아닌 국가의 승리”라며 “충돌과 긴장, 양극화가 존재하지 않는 터키를 위해 함께 나아가자”고 말했다.
사전 여론조사에서 단독 정부 구성이 힘들 것으로 점쳐졌던 AKP가 예상을 깨고 역대 최다 득표율(2011년 총선 49.83%)과 비슷한 수준을 얻은 것은 지난 총선 이후 5개월 여간 이어진 혼란사태 때문으로 평가된다. 올 6월 총선 이후 터키 정부는 쿠르드족 반군인 쿠르드노동자당(PKK)과 평화협상 결렬을 선언하고 교전을 거듭하면서 최근까지 군인과 경찰관 등 150여명이 숨지고 PKK 조직원 2,000여명이 사살됐다. 여기에 지난달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 주도로 자폭테러 2건이 발생해 130여명이 사망, 국민의 우려는 최고조에 달했다. 잇따른 정국 불안으로 리라화 가치가 25% 급락하는 등 통화 위기도 겹쳤다.
이 같은 혼란상에 책임이 큰 에르도안 대통령은 오히려 ‘강한 정부’를 앞세운 선거 전략으로 불안한 민심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뉴욕타임스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도박이 먹혀 들었다”며 “애국주의자로서의 면모를 강조하면서 IS, 쿠르드 반군에 대해 강경한 태도로 일관하는 전략이 유효했다”고 전했다. 가디언도 “에르도안 대통령의 ‘나를 뽑을 것인가 아니면 혼돈을 택할 것인가’ 식의 전략이 승리를 거뒀다”고 분석했다.
5개월 만의 총선 승리로 에르도안 대통령은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개헌을 서두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승리로 터키의 불안이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터키 법관 출신 칼럼니스트 수앗 키니킬리오클루는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에서 “터키 국민들은 민주주의의 기본 바탕인 인권이나 표현의 자유보다 안정을 택한 셈”이라며 “터키가 얼마 안돼 또다시 소용돌이 속에 빠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페틴 구르셀 정치분석가도 “AKP는 국민의 공포심을 자극해 마음을 돌려 놓았지만 나머지 절반의 국민은 아직도 에르도안 대통령을 믿지 못하고 있다”며 “반대 세력을 모두 테러리스트로 폄하하는 등 그의 강경책이 이어진다면 터키가 지금보다 더 양극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지후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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