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모(29)씨는 지난달 말 회식 후 귀가하던 길에 최신형 스마트폰을 택시에 두고 내렸다. 내리자마자 이 사실을 인지한 김씨는 곧바로 인근 식당으로 뛰어가 자신의 번호로 전화를 수십 통 걸었지만 허사였다. 어느새 전원이 꺼져 있던 것. 김씨는 “배터리도 충분한 상태였기 때문에 누군가 고의로 전원을 끈 것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며 “현금으로 결제해 택시를 추적하기 어려워 결국 수십만원의 위약금을 물고 새 휴대폰을 살 수밖에 없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김씨가 택시에 두고 내린 휴대폰을 찾을 수 없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분실한 휴대폰을 장물업자들에게 팔아 넘긴 택시기사들과, 이를 넘겨 받아 중국에 밀수출한 전문조직이 있었던 것이다.
서울 은평경찰서는 승객이 두고 내린 휴대폰을 장물업자들에게 팔아 넘긴 혐의(절도)로 택시기사 박모(57)씨 등 11명과 이들로부터 휴대폰을 매입한 혐의(장물취득 등)로 장물업자 남모(30)씨 등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3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 등 택시기사들은 승객들이 두고 내린 휴대폰을 발견하자마자 배터리를 분리하는 방식으로 전원을 껐다. 통신사 기지국이나 데이터 사용 정보 등을 통한 위치추적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다. 이후 이들은 이른 새벽 택시기사들이 모이는 서울ㆍ경기 일대 가스충전소나 유흥가 등에서 이른바 ‘차잽이(장물업자)’들과 접촉했다. 매입 장소와 시간 등의 정보는 기사들과 장물업자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공유된 것으로 알려졌다.
장물업자들은 지나가는 빈 택시를 보면 스마트폰 액정을 켠 뒤 흔드는 ‘딸랑이’ 수법을 사용해 자신이 분실 휴대폰을 매입한다는 사실을 알렸다. 업자들은 이 같은 방식으로 지난 5월부터 7월까지 대당 5만~30만원을 주고 총 164대(3,500만원 상당)를 매입했다.
장물업자들이 매입한 최신형 스마트폰은 중국으로 넘어가면서 새 폰으로 둔갑했다. 장물업자들은 택시기사로부터 매입한 가격의 두 배가량을 받고 중국에 넘겼다. 인천 국제여객터미널을 드나 드는 ‘따이공(보따리상)’들이 운반책으로 이용됐다. 이들은 의심을 피하기 위해 한 사람당 한두 대의 휴대폰을 장물업자들로부터 건네 받은 뒤 이를 중국에 있는 매입 총책에게 넘기면서 대당 1만원가량의 사례비를 받았다. 국내에서는 분실폰 사용이 불가능하지만 중국에서 케이스와 메인보드 등이 새 것으로 교체되면서 시중가보다 저렴한 가격의 새 폰으로 버젓이 팔렸다.
이번에 적발된 택시기사들의 경우 통상적으로 적용되는 점유이탈물횡령 혐의보다 형량이 더 무거운 절도 혐의가 적용됐다. 휴대폰을 두고 내린 사실을 안 피해자들이 하차 직후 전화를 걸어왔음에도 연락이 닿지 않도록 일부러 휴대폰 전원을 끈 ‘고의성’이 고려됐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전원을 끄고 장물업자에게 처분한 것은 물적 이익을 취하려는 적극적인 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간주했다”며 “밀수출한 보따리상을 비롯해 범행에 가담한 택시기사들을 추적 중”이라고 전했다.
정준호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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