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강행으로 치달은 국정화 사태
국정화 반동 부른 책임 전교조에도
급진 이념단체들, 논쟁 어지럽힐 뿐
교과서가 핵심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솔직히 우리가 국사시간에 주로 한 건 ‘태정태세문단세…’나 1894년 갑오경장, 1905년 을사늑약 등의 연표 외우기였으니까. 뜻도 모른 채 ‘실학의 정신은 경세치용, 이용후생, 실사구시’따위를 외웠다. 한국사는 암기과목이었다. 객관식 수능시스템에서 다양하고 깊은 생각은 도리어 시간낭비다. 다만 교과서 때문에 청소년의 국가관이 왜곡된다는 것은 그래서 과장이거나 오진(誤診)이다.
10여년 전 육사생도의 3분의1이 미국을 주적(主敵)이라고 해 파문이 일었다. 그들이 고교 때 배웠던 ‘근현대사’(이후 통합 한국사) 교과서 모두(冒頭)에 명시된 ‘학습성취기준’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인식하고, 우리 현대사는 경제발전과 자유민주주의 신장을 위한 과정임을 이해한다’ 등이었다. 그래선지 교과서가 주인(主因)으로 거론되지는 않았다. 대신 노무현시대의 진보좌파적 사회 분위기, 나아가 교사들의 수업이 도마에 올랐다. 결국 전교조가 타깃이 됐다.
청소년기에 세상 눈을 익히는 데는 교사의 영향이 더 크다. 그 점에서 전교조 ‘일부’ 교사들의 언행은 자주 도를 넘었다. 아무리 전교조가 ‘악의적 발췌’ 등으로 반박한들, 독한 적대와 극단의 편향이 거슬리는 숱한 학습자료와 구체적 행태, 학생 이의제기 등을 다 덮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 우익독재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된 1980년대식 대학가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사고의 정체성, 경직성, 그리고 거친 언행은 매번 답답하고 당혹스럽다. 국정화 사태의 직접 발단은 물론 박근혜 대통령과 정권의 과욕이지만, 전교조도 빌미를 만들어온 한 축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뭐든 지나치면 반드시 반동을 부른다는 점에서. 한편으론 정부가 교과서에 괜한 힘을 들이는 것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제 확정고시가 됐으니 길은 두 갈래뿐이다. 하나는 반대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아져 정부가 고시를 철회하는 길이고, 아니면 구성 집필 내용 등 진행과정을 세밀히 들여다보면서 정말 ‘올바르지 않은’ 교과서가 나오지 않도록 감시하는 길이 다른 하나다. 다 만만치 않은 길이다. 박 대통령의 무서운 결기로 보아 전자는 아예 가망성이 없다고 보는 게 맞다. 그래도 굳이 가겠다면 한동안 또 나라가 결딴나는 상황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형식상 행정절차를 다 밟았으므로 문제 삼을 위법성도 없다.
후자의 길도 험하기론 다를 게 없다. 내놓고 일하기가 어려워진 집필 측의 극도 보안부터 난공(難攻)의 벽일 것이다. 제한된 정보로 판단하기도 어렵고, 그렇게 해서 또 얼마나 반영될지도 알 수 없다. 그래도 다른 길의 완강한 폐색에 비하면 이게 그나마 한 가닥 잔도(棧道)라도 여는 방법일 것이다.
어쨌든 어떤 길이건 전교조 같은 단체는 나서지 말기 바란다. 여론에서 지금은 반대하는 중도실용층 상당수도 정작 그들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고 보면 된다. 실제로 과거 경기교육감선거 때 이런 정서 때문에 전교조가 전략적 침묵을 택한 적도 있다. 이번에도 야권 일각에 비슷한 분위기가 있다. 전교조는 차라리 자중하면서 이번 일을 통절한 자기반성과 체질개혁의 계기로 삼는 것이 옳다.
편의상 대표조직인 전교조를 거론했을 뿐이다. 반대방향으로 편향성이 두드러지는 뉴라이트 쪽도 마찬가지다. 실소나 불쾌감을 자아내게 하는 행동파 극우단체들이야 거론할 것도 없다. 좌우 모두 급진적이거나 비지성적인 이념단체들은 빠지라는 얘기다. 기왕에 화살이 시위를 떠난 마당이라면, 우리 사회에서 드문 논리적이고도 실증적인 논쟁의 장이 펼쳐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렇게만 된다면야 이 이상 스스로에 자긍심을 갖게 하고 청소년에 교육적인 일이 또 있을까.
그럼 국정화를 기정사실화하는 거냐고? 조급해할 것 없다. 2년 뒤 반드시 이 문제가 재연할 것이므로. 그 때를 대비해 단단한 설득력을 쌓아갈 일이다. 마땅치 않아도 달리 선택지가 안 보인다.
주필 jun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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