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격랑ㆍ국민 분열 심화 전망
역사학계와 일선교사, 학생, 시민사회의 비등한 반대여론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논리는 그간의 좌편향을 지적하는 또 다른 편향성에 의존했고, 한편으로는 빈약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확정을 알리는 정부 발표에 대한 평가다. 하고 싶은 말만 하는 ‘불통 정부’를 다시 확인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3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2015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중ㆍ고등학교 교과용도서의 국ㆍ검ㆍ인정 구분안’을 확정 고시한다고 밝혔다. 확정된 구분고시를 통해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 과목은 종전의 검정에서 국정으로 전환돼 오는 2017년 3월부터 학교 현장에 보급된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이날 ‘역사교육 정상화를 위해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편향된 교과서로 역사교육을 받고 있는 지금의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면서 “편향된 역사교과서를 바로잡아야 학생들이 우리나라와 우리 역사에 대한 확실한 정체성과 올바른 역사관을 가질 수 있다”고 밝혔다. 황 총리는 이어 “전국 2,300여개 고등학교가 있는데 그 중 세 학교만 교학사 교과서를 선택하고, 나머지 99.9%는 편향성 논란이 있는 교과서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친일과 독재 미화 논란을 빚은 교학사를 제외하고 나머지 모두를 편향 교과서로 규정한 것이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도 “현행 역사교과서의 검정 발행 제도로는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확정하면서 진정성을 거듭 강조했다. 황 총리까지 나서 “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한 정부의 진정성을 믿어 달라”며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친일ㆍ독재 미화의 역사왜곡은 없다”고 못박았다.
하지만 국민의견 수렴을 위해 지난달 12일부터 2일 자정까지 이뤄진 행정예고가 끝나자마자 속전속결로 국정화를 확정한 것만으로도 반대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추진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실제 행정예고 기간인 20일 동안 접수된 의견 중 반대 의견을 낸 인원은 32만1,075명으로 전체(47만3,880명)의 67.75%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찬성 의견을 제출한 인원(15만2,805명)의 2배가 넘는 수치다.
발행체제를 정부로 바꾸면서까지 만들겠다는 올바른 역사교과서에 대해 정부는 무엇이 올바른지, 올바르다고 판단하는 주체는 누구인지 밝히지 못했다. 이와 관련된 질문에 황 부총리는 “이제 확정고시가 됐기 때문에 어떤 교과서가 좋은 교과서이고, 누가 주도하고 검증하느냐는 것은 이제부터의 현안”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이날 국정화 확정으로 집필진 구성에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정부는 이달 중순까지 집필진을 구성한다는 방침이며, 한국상고사학회장 등을 지냈던 최몽룡(69)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명예교수를 상고사ㆍ고대사 대표 집필자로 내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의 일방통행 식 국정화 추진은 국민분열과 불복종 운동 확대로 연결될 전망이다. 전국 17개 시ㆍ도 교육감 가운데 진보성향의 교육감 10여명은 대안교과서를 공동으로 발간하겠다고 나섰다. 479개 시민사회단체가 결성한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와 청년연대 등 진보단체는 정부의 확정고시를 “쿠데타 군사작전”이라고 규정하고 촛불집회 등 국정화 반대 운동의 강도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반면 보수단체들은 국정화 확정을 환영하며 반대 운동에 맞불 집회로 맞설 방침이다. 정치권에서도 모든 일정이 중단되는 등 우리 사회 전체가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야기한 격랑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대혁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김현수기자 ddacku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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