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확정 발표에 드러난 정부의 논리는 검정 교과서의 편향성을 지적하는 예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친일ㆍ독재 미화 논란을 야기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만이 정상적인 교과서라는 또 다른 편향성까지 내비쳤다. 정부의 ‘역사교육 정상화’가 보수 입맛에 맞는 교과서를 기반으로 한 교육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이날 ‘역사교육 정상화를 위해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을 발표하면서 작심한 듯 검정 교과서들의 편향성을 지적했다. 황 총리는 파워포인트 영상 화면까지 펼쳐 보이면서 국정제로의 전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는 그간 정부여당이 좌편향 근거라고 내세운 자료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고, 되레 검인정제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는 반격을 받았다.
실제 황 총리는 두산동아 출판사가 발간한 한국사 교과서 278쪽 “6ㆍ25 전쟁이 일어나기 이전 남북한 간에 많은 충돌이 있었다”는 기술을 거론했다. 그는 문제의 기술이 “너무나도 분명한 6ㆍ25전쟁의 책임마저 북한의 잘못이 아닐 수 있다는 그릇된 생각을 갖게 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전쟁 전 있었던 사실을 적은 것에 불과해 ‘그릇된 생각을 갖게 할 우려’는 일방적인 해석이라는 지적이다. 미래엔의 한국사 교과서 저자 중 한명인 조왕호 교사는 “6ㆍ25전쟁을 기술하면서 남북 공동책임론을 명시한 교과서는 단 한 권도 없다”며 “당초 검인정의 취지가 다양한 시도를 하자는 것인데다 이 부분 역시 전쟁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고 토론하자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황 총리는 지학사 교과서 349쪽도 예로 들며 “남한보다 북한에 국가 정통성이 있는 것처럼 의미를 왜곡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은 정부 수립인 반면 북한은 국가 수립으로 돼 있는 서술을 꼬집은 것이다. 그러면서 황 총리는 “대한민국은 마치 국가가 아니라 정부 단체가 조직된 것처럼 의미를 축소하는 한편, 북한은 정권수립도 아닌 국가 수립으로 건국의 의미를 크게 부여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는 헌법 부정 논란을 자초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헌법 전문을 부정하면서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하자’는 뉴라이트 진영의 시각을 대변한 것으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사실상 황 총리가 국정 교과서에 이날을 건국절로 못 박아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철호 동국대 사학과 교수는 “당시(모든 사진자료에는)‘대한민국 정부 수립 기념식’으로 돼 있고, 이승만 대통령조차도 제헌 헌법을 통해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하겠다고 인정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우편향 논란이 제기된 교학사 교과서를 두둔한 인상을 심어준 점은 국정화에 대한 정부의 편향성을 자인한 것이란 지적이다. 황 총리는 검정교과서 체제가 되레 다양성을 훼손한다는 근거로 교학사 교과서 채택률을 예로 들면서 “전국 2,300여개 고등학교 중 세 학교만 교학사 교과서를 선택했고 나머지 99.9%가 ‘편향성 논란이 있는 교과서’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교학사 교과서만이 정상적이란 인식이 깃들어진 셈이다.
황 총리는 아울러 일부 교과서들이 북한의 천안함 폭침도발 내용을 싣지 않고 있다는 사실과 관련, “북한의 침략야욕을 은폐ㆍ희석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황 총리는 나아가 “일부에서 천안함 폭침도발을 미국 소행으로 왜곡하거나 암초에 부딪혀 좌초된 우발적 사고인 양 허위 주장을 인정하고 있는 듯하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역사학자들은 천안함 관련 내용은 교육부가 제시한 집필기준에도 없어 기술하지 않아도 되는 대목이라고 반박했다.
이와 함께 황 총리는 “현재 한국사 교과서 집필진 다수가 특정단체, 특정학맥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라며, 특정 집필진이 한국사 교과서를 주도하는 ‘카르텔 구조’를 비판했다. 편향성 논란의 핵심으로, 1980년대 불붙은 민주화 과정에서 떠오른 ‘민중사학’ 사관의 역사학계를 언급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두산동아의 한국사 교과서 저자인 왕현종 연세대 교수는 “2011년 교과서 집필 때는 집필진 100명중 절반 이상이 떨어졌는데, 2014년 집필 때는 기간이 짧아 어쩔 수 없이 교과서 집필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며 “이게 무슨 카르텔이냐”고 반문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김민정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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