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 도안고가 권력에 눈이 멀어 적수인 문인 조순의 9족, 300명을 멸한다. 유폐된 냉궁에서 공주는 조순 아들 조삭의 아이를 낳고, 문객인 떠돌이 의사 정영에게 아들 고아를 맡기고 머리끈으로 목을 매 죽는다. 예전 임신한 처에게 쌀가마니를 하사한 조순의 “그 은혜”를 “평생을 두고 갚아야 된다”며 냉궁에 인사갔던 정영은 덥석 고아를 품에 안게 되고,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 마흔 다섯에 본 첫 아들을 죽여 고아를 살려낸다. 도안고 슬하에게 자라 스무 살에야 제 뿌리를 알게 된 고아는 복수를 감행, 도안고 살갗을 “얇게 삼천 번을 저며” 죽이고 도안고의 9족을 다시 멸한다.
숙청 대상과 복수 방식이 다분히 ‘대륙 스케일’을 자랑하는 기군상(13세기 중국 원나라 작가)의 대표작 ‘조씨고아’가 오늘날의 시선으로 각색돼 무대에 오른다. 22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선보이는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으로 ‘칼로막베스’(맥베스) ‘홍도’(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아리랑’(소설 아리랑) 등을 통해 고전의 남다른 재해석을 선보인 고선웅이 각색 연출을 맡았다.
3일 프레스리허설을 통해 본 이 작품은 고선웅 특유의 웃픈(슬프면서 웃긴) 연극으로 탈바꿈한 21세기 신잡극이었다. 중국 잡극의 알파와 오메가로 등장하는 노래와 악기 연주는 무대 한 켠 콘트라베이스의 청승맞은 연주로, 시 낭송은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레 아흐레/ 신오는 배고파서 죽는다” 같은 음률 맞춘 대사로 바뀐다. 이야기의 핵심은 그대로 두되, 곁가지 인물과 대사를 보태고 빼면서 현대적 감수성을 살렸다. 이를테면 원작에서 존재감 없는 정영의 처가 아이를 빼앗기고 실성해 “왕후장상의 씨가 아닌 놈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남의 팔자를 따라 살고 죽을 팔자냐?” 같은 대사를 내뱉는 대목이다.
능글맞은 고선웅의 각색과 연출에도 한 번 내뱉은 말 때문에 ‘제 핏줄 죽여 남의 핏줄 지킨다’는 핵심 설정은 각자도생이 캐치프레이즈가 된 현대사회에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 연출은 이를 배우로 돌파하는 승부수를 던졌고, 작품의 핵심을 고아가 아니라 정영 역의 하성광에게 맞췄다. 그는 “자기의 감수성으로 연출의 디렉션을 크게 확대해 잡아가는 멋진 배우”라는 연출의 말처럼 “1막부터 하이텐션으로 감정의 격랑을” 2시간 20분 내내 유지한다. 제 아이를 죽여 남의 자식을 살리고, 복수를 위해 20년을 기다리고, 진정성을 보이기 위해 제 팔뚝을 자르는 장면을 통해 찌질함과 비장함, 복수 끝의 허무함과 처연을 펼쳐보인다. 2막 늙어버린 정영이 허연 얼룩을 얼굴에 묻힌 채 무표정하게 복수를 기다리는 장면, 복수 후 환상 속에서 죽어간 조씨 일가 300명과 정영의 처가 그를 외면하는 장면은 서글픈 음악과 맞물리며 비장미마저 준다. 고선웅이라는 이름에 이끌려 극장을 나선 관객이 하성광을 기억하고 나올 작품이다. 1644-2003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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