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본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12개국이 참여해 세계 최대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으로 평가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자유화 수준이 한미 FTA와 유사한 95~100%인 것으로 확인됐다. 다자 FTA의 특징인 누적원산지 규정, 한미 FTA에는 없는 국영기업 조항 등 새로운 통상질서를 만들 조항도 대거 포함됐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TPP 회원국 중 뉴질랜드 외교통상부가 5일(한국시간) 오후 TPP 협정문을 최초로 공개했다. 모두 30개 챕터로 구성된 TPP 협정문을 분석한 결과, 상품양허는 관세가 발효 즉시부터 최장 30년에 걸쳐 낮아지면서 관세철폐율(품목수 기준)이 95∼100%였다. 당초 예외 없는 관세철폐를 목표로 했던 것과 달리, 협상 과정에서 일부 국가의 민감성을 반영해 절충점을 찾은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는 TPP의 자유화 수준이 한·미 FTA(한국 99.8%, 미국 100%)와 엇비슷한 것으로 평가했다.
자유화 수준을 국가별로 보면 미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뉴질랜드, 싱가포르 등 8개국이 100%였으며 페루, 캐나다, 멕시코가 99%, 일본은 95%였다. 공산품의 경우 일본산 자동차를 우려한 호주가 중고차, 멕시코는 화물차를 예외로 인정받아 자유화 수준이 99.8%(호주), 99.6%(멕시코)였고, 미국 일본 등 나머지 10개국은 100% 개방했다. 일본은 농산물 등 80여개 품목을 양허에서 제외해 자유화 수준이 낮아진 것으로 보인다. 산업부는 “일본은 경쟁력이 강한 자동차 등을 상대국에 양보하는 대신 민감품목인 농산물 등을 보호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TPP가 발효되는 시기는 총선 대선 등 각국의 정치상황을 고려할 경우 2017년 안팎으로 예측된다. 서명 2년 뒤에도 모든 나라가 비준하지 못하면 국내총생산(GDP) 합계가 85% 이상인 미국 일본 등 6개 나라가 비준한 후 60일 뒤에 부분 발효 하는 걸로 명시됐다.
정부는 TPP 회원국 중 일본과 멕시코를 제외한 나머지 10개국과는 이미 양자 혹은 다자(아세안) FTA를 체결했기 때문에 공산품의 경우 당분간 선점효과를 누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TPP에서 미국이 일본에 발효 즉시 관세를 철폐하는 비율이 67.4%(이하 수입액 기준)인데 비해 한미 FTA는 TPP가 발효될 것으로 예측되는 2017년 1월1일부로 미국의 관세 약 95.8%가 무세화된다. 한·호주 FTA도 2017년 96.7%, 한·캐나다는 95.9%의 공산품 관세가 사라진다.
관심이 컸던 자동차 분야의 경우 한미 FTA에서 미국은 한국에 승용차 5년, 화물차는 7년에 걸쳐 관세를 철폐하나 TPP에서 미국은 일본에 승용차를 25년, 화물차를 30년에 걸쳐 없애 한국에 유리한 것으로 분석됐다. 기계, 전기·전자 분야의 경우 미국이 일본에 대다수 품목의 관세를 즉시 철폐했으나 미국은 한국에 일부 가전제품을 10년에 걸쳐 철폐해 일본과 경쟁이 심화할 것으로 예상됐다.
TPP의 규범 분야는 다자간 FTA의 특징인 누적 원산지 개념이 등장했다. 누적원산지는 최종 생산제품에 TPP 회원국의 부품이나 소재를 사용한 경우 자국산으로 간주해 일정 비율이 넘으면 특혜관세 혜택을 부여하는 제도다. 또, 국영기업, 협력 및 역량 강화, 경쟁력 및 비즈니스 촉진, 개발, 중소기업, 규제조화 등 한미 FTA에는 없는 규범 6개도 생겼다. WTO DDA 협상, 복수국간 서비스협정 협상 등에서 논의되는 글로벌 트렌드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국영기업(정부가 50% 이상 소유하거나 의결권을 50% 이상 가져 지배권을 가진 기업)은 민간기업과의 공정한 경쟁을 위해, 해외 진출 시 정부 보조금 같은 지원 통해 다른 민간기업에 피해를 주고, 상대국이 피해 인과 관계를 증명할 때 정부지원을 제한하도록 했다. 김학도 산업부 통상교섭실장은 “어느 기업이 해당되는지는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가스공사나 한국전력은 공공서비스를 제공할 뿐 상업활동을 하지 않는다”며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는 우리가 TPP에 참여할 경우 우리 기업의 수출과 투자 진출에 긍정적인 영향이 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서비스·투자 시장 및 정부 조달 시장의 개방폭 확대, 지적재산권·전자상거래 등 규범 및 제도의 통일과 선진화 등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실장은 “범부처 TPP 협정문 분석 TF를 가동해 우리 산업과 경제에 미칠 세부적인 영향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공청회, 국회 보고 등 통상절차법에 따른 일련의 절차를 거쳐 국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정부 입장을 최종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민식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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