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충남 서산 농촌마을의 한 공터에서는 도사견을 기르던 뜬장(배설물을 쉽게 처리하기 위해 바닥에서 띄워 설치한 철창)을 해체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굴삭기가 땅을 파내고 철창과 지붕을 치웠다. 투견 번식을 위해 갓 태어난 새끼들을 키우던 비닐하우스는 틀만 남았다. 이곳은 7월까지만 해도 투견이나 식용견으로 팔기 위해 120여마리의 도사견을 키우던 농장이었다. 주인 김모(54)씨는 1년 6개월 전 적자가 쌓이던 고깃집을 닫고 지인 소개로 경기 안성의 도사 모견 50마리를 구매해 농장을 시작했다. 하지만 수익이 크지 않았고, 무엇보다 팔린 개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을 보고 사업을 접을 결심을 했다.
하지만 생업인지라 당장 그만둘 수도 없어 고민하던 즈음에 국제동물보호단체 휴메인소사이어티(HSI)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HSI는 농장을 구입해 개는 미국에 입양시키고 농장주에게는 전업을 유도하는 캠페인을 벌였는데, 참여할 의사가 있느냐고 제안해 왔다. 김씨는 농장을 다시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키우던 도사견을 모두 넘겼다. 이후 HSI를 통해 도사견 120마리는 모두 미국으로 보내졌고, 현재 90%가 입양돼 새 가족을 찾았다.
미국에 본부를 둔 HSI는 유럽, 아시아 등 10여개국에서 동물보호활동을 펴고 있다. 5년 전 중국 베트남 필리핀에서 개식용을 막는 캠페인을 벌인데 이어 2013년부터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HSI가 파악한 한국 개고기 시장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다르게 대규모 농장 중심이라는 특수성이 있었다. HSI는 이에 맞춰 농장주인에게 전업을 지원하고, 개는 인수해 해외에 입양시키는 ‘농장 폐지 캠페인’을 도입했다. 비용은 민간 기부를 통해 마련하고 있다. 이 캠페인으로 올해 1월 경기 고양시의 농장을 시작으로 충남 홍성(3월), 충남 서산(10월)의 농장 폐업을 이끌어 냈다. 고양시의 농장주는 블루베리 재배 농사를 확대했고, 충남 홍성의 농장주는 고추 농사로 전업했다. HSI가 올해 미국으로 보낸 도사견은 200여마리에 달한다.
HSI는 농장 폐쇄를 통해 한국인의 식습관을 어느 정도 바꿀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해외단체가 국내에서 소리 나지 않게 개를 보호하는 캠페인을 벌이자 한국인의 마음도 움직이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중심이 된 국내 동물보호단체들은 HSI와 손잡고 다양한 캠페인을 계획하고 있다. HSI의 롤라 웨버 아시아 지부 캠페인 매니저는 “큰 농장들의 경우 전업을 유도하기가 쉽지 않다”며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대책도 필요하다”며 정책적 지원을 요청했다. 실제로 최근 HSI가 방문한 한 대형 농장에는 무려 1,000여마리가 사육되고 있었다. 도사견 900마리와, 비글·도베르만·리트리버 등 이른바 반려견 100마리가 뜬장에 갇혀 있었다. 1980년대부터 이 농장을 운영한 김모씨는 “300마리 이하 규모로 운영하면 수익이 나지 않고 시장전망도 밝지 않지만 대책이 없어 계속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개고기는 유통부터 도살까지 모두 불법도 합법도 아니다”며 “정부에서 합법화를 해주든지 그게 안되면 폐업하려는 사람들에게 저리 대출 등의 전업지원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개는 축산물위생관리법에 가축으로 등록되어 있지 않아 도축하거나 유통하는 것을 관리, 감독할 법적 근거가 없는 상태다.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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