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시철 대한민국 최고 유명세 자랑
시줏돈 둘러싼 풍문과 뜬소문 파다
학생수 감소와 수시모집 등으로 수능 응집력은 약화
대학 입시철 대한민국에서 가장 후끈 달아오르는 곳을 꼽으라면 팔공산 갓바위를 빼놓을 수 없다. 해발 853m의 새벽 안개 속에서도 수험생 자녀의 대학 합격을 기원하는 어머니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곳이다.
갓바위 가는 길은 노랑 빨강 초록 엽록소가 지천으로 뿜어나오는 가을철 대표 등산로이기도 하다. 경북 경산시 와촌면 팔공산 갓바위는 보물 431호인 관봉 석조약사여래좌상의 별칭이지만, 불상 머리에 갓처럼 생긴 판석 때문에 본래 이름보다는 갓바위로 널리 알려져 있다. 높이 4m의 갓바위를 보기 위해 연간 수 백만 명의 인파가 몰리는 것은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믿음 때문이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학부모들이 갓바위 부처로 몰리면서 한때 수능철 갓바위 가는 길은 산 아래 도로부터 막혔다.
수능시험을 하루 앞둔 11일 오전 7시 경산 방면 등산길로 30분 만에 갓바위에 도착했다. 이곳 야외도량에는 새벽부터 일찌감치 올라온 10여 명의 수험생 학부모들이 갓바위 부처님 앞에서 지성을 드리고 있었다. 두 무릎과 두 팔, 머리를 바닥에 대는 오체투지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팔공산에 해가 떠오르고 학부모들이 늘어날수록 “약사여래불”을 외는 발원은 커져만 갔다. 올해 수능한파는 없었지만 늦가을 산바람이 제법 쌀쌀한데도 땀을 흘리며 반팔 셔츠 차림으로 기도하는 불자도 눈에 띄었다.
지난 8월5일 시작된 갓바위의 수능 100일기도는 이날로 99일째. 오전 10시 갓바위는 수 백의 간절한 마음들이 모여 발디딜 틈이 없었다. 대구 달서구에서 온 한 50대 초반의 어머니는 “아들이 경기 남양주 기숙학원에서 재수를 하고 있는데 올해는 꼭 원하는 대학에 가기를 바란다”며 “수능 100일 기도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 5시면 집에서 나와 4시간 정도 기도를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갓바위는 유명세에 걸맞게 숱한 풍문과 뜬소문을 끼고 살았다. 한때 이곳의 한 해 시줏돈이 70억, 80억원에 이른다는 풍문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불자들이 대부분 갓바위 옆 산중 종무소에서 시주를 했는데, 워낙 지폐가 많다 보니 마대자루 여러 개에 나눠 담았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여기다 한 술 더 떠서 마대자루 운반 방법을 고민하던 사찰 측이 터널로 된 비밀통로를 뚫어 산 아래 선본사로 내려보냈다는 설까지 나왔다. 여기에 갓바위와 선본사가 조계종 총무원 직영사찰이 된 것도 말썽의 소지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는 양념까지 곁들여지며 소문은 확대 재생산됐다.
하지만 최근 조계종 직영사찰법이 개정되면서 갓바위를 둘러싼 잡음도 많이 사라졌다. 갓바위 주지를 경북 영천의 은해사가 추천토록 하는 등 변화의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직영사찰 자체를 해제하지는 않았지만 주지 추천권을 직영 이전 교구 본사에 돌려준 것 만으로도 커다란 변화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국에 널리 알려진 갓바위의 브랜드를 선점하려는 지방자치단체의 경쟁도 치열하다. 통일신라시대 건축된 갓바위의 행정구역 상 위치는 경산시 와촌면이어서 경산시가 갓바위를 브랜드로 한 축제를 해마다 이어오고 있다. 경산시는 올해도 9월18∼20일 ‘제15회 경산갓바위 소원성취 축제’를 열고 다례봉행과 통일 북소리 공연, 소원지 달기, 합격 기원 찹쌀떡 만들기 등으로 갓바위를 알렸다. 경산시는 2013년 갓바위를 국보로 승격해달라고 신청하기도 했다. 경산시 관계자는 “조성연대와 건축양식, 보존상태 등 갓바위의 역사 문화적 가치를 고려할 때 경주 석굴암에도 밀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도전장을 내민 곳은 대구 동구다. 동구 방면에서도 1시간 정도 걸리는 갓바위 등산로가 있기 때문이다. 등산로를 돌계단으로 정비하고 밤새 가로등을 밝힌 것은 경산과 마찬가지다. 덕분에 갓바위는 1년 365일 24시간 참배객과 등산객이 끊이지 않는 전천후 야외도량이 되고 있다.
대구 방면 갓바위 집단시설지구 번영회 상인들은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2일까지 ‘16회 팔공산 단풍축제’를 개최, 갓바위를 둘러싼 경산과의 기득권 다툼에 맞불을 놓았다.
대구 방면에서는 2년 전 환경단체 반발로 무산된 케이블카도 다시 추진되고 있다. ㈜대경문화관광개발은 대구 동구 진인동 갓바위 집단시설지구와 도학동 노적봉 아래 해발 828m 지점까지 1.3㎞를 잇는 공산케이블카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하루 최대 1만2,000명 탑승을 목표로 케이블카 34대를 운행한다는 것이다.
대구시에 따르면 2013년 6월 집단시설지구에서 갓바위 서쪽 230m 지점을 연결하려던 케이블카 설치 계획은 문화재청 현상변경 심의에서 부결됐다. 문화재보호법은 문화재 주변 500m 이내에 시설물을 설치할 경우 허가를 받도록 되어 있는데다 환경단체의 반발도 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경문화관광개발 측은 갓바위 서북쪽 520m 지점인 노적봉 아래를 케이블카 승강장 부지로 새로 정하고 곧 공원계획 변경을 신청할 예정이다. 하지만 환경단체는 “업체가 갓바위 방문객을 끌어들여 수입을 올리겠다는 의도가 뻔한데 등산로를 훼손하고 안전문제도 우려되는 케이블카를 허가해서는 안된다”고 반발, 케이블카 설립을 둘러싼 2라운드가 달아오르고 있다.
영원할 것 같던?갓바위의 위세도 달라진 세태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입시철이 따로 없는 수시모집이 떠오르기 전에는 너나 없이 수능에만 올인하는 통에 갓바위의 인기는 극에 달했다. 그래서 수능을 향한 갓바위 전세버스 행렬도 전국에서 꼬리를 물었다. 경상권은 말할 것도 없고 경기, 전라, 충청, 강원권에서도 어머니들이 버스를 대절해서 갓바위를 찾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하지만 갈수록 수시모집이 다양화하고 대세로 떠오르면서 갓바위를 향한 수능의 응집력이 한풀 꺾이고 있다. 대학 신입생의 절대적 감소도 한 몫 하고 있다.
갓바위를 관할하는 선본사에 따르면 2013년 수능 전날에는 사찰에서 준비한 3,000명 분의 수능합격 기원 떡과 엿이 모자랐지만 2,000명 분을 마련한 지난해에는 오히려 남아돌았다고 한다. 고민 끝에 올해는 2,000명 분을 만들기는 했지만 분산해서 골고루 나눠주는 묘책을 동원해야 했다.
선본사 종무소 관계자는 “수능 100일기도를 접수해보면 예년보다 30%는 줄어들었다”며 “수험생 감소에다 어머니들의 가치관 변화도 느껴지고 있다”고 말했다. ?
대구=전준호기자 jhj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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