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에서 현 정부 들어 최대인 10만명이 운집하는 민중총궐기 집회를 앞두고 경찰과 주최 측이 때아닌 ‘논술대란’ 공방을 벌이고 있다. 전국민 중 관련되지 않은 사람이 없는 대학입시가 갖는 우리 사회 비중을 보여주는 단면이란 지적이다.
13일 경찰에 따르면 민주노총 등 53개 노동ㆍ농민ㆍ시민사회단체로 이뤄진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는 14일 오후 4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정부를 규탄하는 ‘민중총궐기 투쟁대회’를 연다. 문제는 이날 경희대 고려대 서강대 성균관대 등 서울시내 12개 대학에서 오전부터 논술 또는 면접고사가 치러진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정부와 여당, 경찰은 “집회와 행진이 시내 교통에 영향을 미쳐 수험생이 지각 등의 피해를 볼 우려가 있다”며 맹공을 퍼붓고 있다. 실제 이들 대학은 주최 측이 개최하는 부문별 집회 장소 인근에 위치해 있어 어느 정도 교통난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또 휴일에다 오전까지 비가 내리 것으로 예보돼 수험생들의 불편이 예상된다. 경찰 관계자는 “날씨 변수까지 겹쳐 수험생 피해가 가시화할 경우 대규모 도심 집회의 명분이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주최 측은 “합법적인 행사를 놓고 정부가 논술시험을 빌미로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논술시험 등은 대부분 오전에 실시되고, 집회는 오후 늦게 시작된다는 것이다. 고형욱 전국농민총연맹 사무총장은 “대학들의 시험 일정을 다 검토했고 가장 문제가 될 수 있는 성균관대 시험을 감안해 대학로 행진도 오후 3시에서 오후 4시로 미뤘다”며 “수험생들에게 피해가 가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학과 수험생들은 대체로 도심 행사가 입시 일정에 큰 영향은 주지 않을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서강대 관계자는 “집회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 변수여서 교통대란이 있더라도 지각사태가 속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험생 이모(20)씨도 “친구들 대부분 지하철을 이용할 이동할 예정“이라며 “수험생을 놓고 서로 유리하게 해석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성균관대가 시험 당일 모범택시 기사와 직원 등 150명을 모아 지하철 혜화역에서부터 학교 입구까지 수험생을 안내하는 등 각 대학은 비상대책도 이미 마련해 놓은 상태다.
한편 서울 일부 경찰서에서 민중대회에 대비해 휴무자와 야간근무자까지 대기령이 떨어져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청 차원에서는 야간근무자 제외 지침을 하달했지만 최상위 비상령인 ‘갑호비상’을 내릴 정도로 엄중한 상황이라 가용 인력을 총동원키로 한 것이다. 한 일선서 관계자는 “비상 근무를 하더라도 시간외수당은 4시간만 지급하겠다는 지침이 내려와 허탈해 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현빈기자 hbkim@hankookilbo.com
박주희기자 jxp938@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