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민간 자산 형성에서 상속ㆍ증여가 차지하는 비중이 1980년대 연평균 27.0%에서 2000년대엔 42.0%까지 높아진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달 상속세 자료를 분석, 자산을 기준으로 한 국내 개인별 ‘부의 불평등’ 상황을 밝혔던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의 후속 연구 결과다. 1980~90년대를 지나며 중산층이 성장하고 가계의 축적 재산도 많아졌기 때문에 국내 상속ㆍ증여 자산 비중의 증가는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산 대비 상속ㆍ증여분의 비중 급증세는 그만큼 부의 불평등 상황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는 지표로서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니다.
물론 우리나라보다 산업화에 앞섰던 선진국들은 가계의 재산 축적도 우리보다 앞섰고, 민간 자산 형성에서 상속ㆍ증여가 차지하는 비중도 우리보다 높다. 2000년대 기준으로 영국은 이미 56.5%에 달했고, 독일(42.5%) 스웨덴(47.0%) 프랑스(47.0%) 등도 우리보다는 높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이제 가계의 재산상황이 어느 정도 고착화한데다, 고령화의 급속한 진전 등으로 앞으론 개인의 부가 스스로 번 소득보다 상속이나 증여에 의해 결정되는 경향이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마디로 요즘 유행하는 ‘수저 계급론’의 현실화가 눈 앞에 닥쳤다는 얘기다.
수저 계급론은 젊은이들의 처지를 부모의 재산 정도에 따라 다이아몬드 수저,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등으로 나누고 흙수저 계층은 아무리 노력해도 금수저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자조적 푸념에 활용돼왔다. 일부라도 젊은이들이 이런 식의 냉소에 빠져 자신의 부진에 대한 핑계로 삼는 풍조는 개탄스럽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런 냉소가 SNS 등을 타고 급격히 확산될 정도로 우리 사회에서 부의 불평등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부의 불평등은 불가피한 현상이지만, 그게 지나쳐 사회 구성원 다수가 절망과 무기력에 빠지는 상황은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 그러자면 돈벌이의 개인차를 인정하되, 승자독식에는 이르지 않도록 적절한 부의 재분배 기능이 강화돼야 한다. 현실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부의 재분배를 추진할 수 있는 장치는 세제다. 진작부터 부자 소득세나 자산 이득세 강화 및 법인세 인상 등의 요구가 높아진 배경이 여기에 있다. 하지만 다수 여론에도 불구하고 국회 세법개정 논의에서는 지금도 여당은 물론, 야당조차도 부의 재분배 강화를 위한 적극적 세제개편에 나서지 않고 있다. 최근 공전을 거듭하고 있는 세제 심의가 끝내 민의에 부응할 만한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한다면 국회와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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