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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국견문록] 밀다원·고갈비의 거리가 들썩인다

입력
2015.11.1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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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光復)’, 다시 빛나는 현대와 과거의 공간

지난해 열린 트리축제 모습. 한국일보
지난해 열린 트리축제 모습. 한국일보

지난해 11월 29일 오후 5시 30분, 어둑해질 시간인데도 부산 중구 광복동 거리는 외려 밝아졌다. 방문객들의 탄성소리를 신호로 일대에 설치된 약 35만개 전구에 일제히 불이 켜진 까닭이다. 광복로 삼거리에 놓인 12면 트리(높이 20m)가 다가올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광복로를 중심으로 37일간 펼쳐진 이 ‘크리스마스 트리 축제’엔 연인원 700만명이 다녀갔다.

부산의 원도심 광복동이 달라지고 있다. 원도심이 가진 풍부한 역사적 스토리텔링에 더해 최근에는 사람의 발길을 잡는 축제로 다시 빛을 발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크리스마스 트리 축제’. 이 축제는 지난해 제59회 세계축제협회 총회의 피너클어워드(Pinnacle Awards) 베스트 TV 프로모션 부문에서 금상을 받으며 세계적 축제로 도약했다. 세계 30개국 1,500여 개 축제가 24개 수상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인 결과였다.

오는 28일부터 내년 1월 3일까지 열리는 올해 축제 의미는 각별하다. ‘(해방 70년, 분단 70년)평화의 성탄, 화해의 성탄, 다 함께 미래로’를 캐치프레이즈로 광복동의 역사적 가치를 더할 전망이다. 올해 축제는 광복로 입구에서 시티스폿(440m), 시티스폿에서 근대박물관 앞(390m), 시티스폿에서 국제시장 사거리(330m) 구간에서 진행된다. 방문객들은 형형색색의 트리 관광만 즐기는 게 아니라 광복동의 문화를 소비할 수 있다. 뒷골목에 옛 향수를 자극하는 공간이 많은 탓이다.

광복동 패션거리 뒷골목인 광복로 67번길은 ‘고갈비 골목’이다. 고갈비는 고등어구이를 부르는 부산사람들의 별칭. 한때 광복동 삼거리에 있던 미화당 백화점과 함께 부산 최고의 상권을 자랑해 이 골목은 항상 고등어 굽는 냄새와 연기가 자욱했다. 전성기인 1980년대엔 전문 음식점이 12곳에 달했지만 지금은 2곳만 남아 애틋함을 더한다.

17일 오후 부산 중구 광복로 일대에서 '2015 부산 밀다원 시대 문학제'가 열려 지역 문인들이 시민들에게 직접 사인한 책을 나눠주고 있다. 부산=전혜원기자 iamjhw@hankookilbo.com
17일 오후 부산 중구 광복로 일대에서 '2015 부산 밀다원 시대 문학제'가 열려 지역 문인들이 시민들에게 직접 사인한 책을 나눠주고 있다. 부산=전혜원기자 iamjhw@hankookilbo.com

광복동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 광복동이라는 이름은 조국의 광복을 기린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 광복동은 과거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고 그들 문화가 번창했던 곳이었다. 숙종 4년(1678년) 들어선 초량왜관은 강화도조약(1876년)을 거치며 일본인 전관 거류지(사실상 일본인 통치구역)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이곳 사람들이 느낀 해방의 기쁨은 유난히 컸다. 그러나 광복의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임시수도로 지정된 부산에 관공서와 주요기관이 내려왔고 덩달아 부산의 인구는 전쟁 전 47만여명에서 1951년 84만여명으로 급증했다.

미군 너머로 보이는 다방 밀다원 간판. 1950년대 부산 광복동 거리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사진제공=부경근대사료연구소
미군 너머로 보이는 다방 밀다원 간판. 1950년대 부산 광복동 거리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사진제공=부경근대사료연구소

이즈음 광복동에 소위 ‘밀다원시대’가 시작됐다. 밀다원시대는 광복동에 있던 다방 밀다원을 배경으로 소설가 김동리가 쓴 책 제목. 피란시대 다방은 예술인들의 안식처였다.

“오늘 아침 지국장에게서 ‘서울서 온 문화인들은 모두 밀다원에 모인다지요’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던들 그는 지금만큼도 활기 있게 지국 문을 나서지 못했을 것이었다. 밀다원은 광복동 로터리에서 시청 쪽으로 조금 내려가서 있는 이층 다방이었다. 아래층 한쪽에는 ‘문총(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간판이 붙어있었다”(김동리 ‘밀다원시대’ 중)

부산 중구 광복동 다방 위치(1950년~1955년) 사진제공=부경근대사료연구소
부산 중구 광복동 다방 위치(1950년~1955년) 사진제공=부경근대사료연구소

당시 광복동에는 밀다원을 포함해 40여 개의 다방이 있었다. 그곳엔 전쟁통에 소식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전화기와 신문이 있었다.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장은 “밀다원 1층에는 문총 사무실이 있어 문화예술인들이 소일거리를 받을 수 있었다”며 “당시 다방은 이들이 정보를 교류하는 공간이자 문화ㆍ전시공간을 해결해 준 오아시스 같은 곳이었다”고 설명했다. 광복동에는 소설가 김동리 뿐만 아니라 화가 이중섭 같은 내로라하는 예술인들도 많았다.

백영수 화백은 회상록 ‘성냥갑 속의 메시지’에서 화가 이중섭을 이렇게 묘사했다.

“하루는 아침 일찍 금강에 나가 앉았는데 이중섭이 들어오더니 내 앞자리에 앉았다. 조금 후 주머니를 부스럭 거리며 유화 물감 흰 것을 한 개 꺼냈다. 그것을 내 앞으로 쑥 밀어 놓는데 이미 3분의 1은 쓴 것이었다. (중략) ‘이거 백형 써’, ‘왜? 이형도 필요할 텐데’. 나는 다시 그것을 그에게 밀어 놓았더니 그가 다시 내 앞으로 밀어 놓았다. 조금 있다가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백형! 나 돈 조금만 줘.’ 나는 다시 물감을 중섭에게 밀어 놓으며 주머니에서 집히는 대로 돈을 주었다. (중략) 더욱이 흰색 물감은 많이 쓰이기 때문에 화가들이 가장 아끼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 것을 중섭이 들고 나와 돈과 바꾸려 했으니 그 절박함이 뼈에 저렸고 그것을 가져오기까지 얼마나 망설였을까 싶기도 했다.”

다방 '밀다원' 방명록에 쓰인 이중섭 화가의 친필서명 사진제공=백영수 화백
다방 '밀다원' 방명록에 쓰인 이중섭 화가의 친필서명 사진제공=백영수 화백

예민했던 예술인들이었기에 시대가 던진 무력감은 컸다. 낭만파 시인 박운삼은 당시 실연이라는 개인적인 어려움까지 더해 밀다원에서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여파로 다방 밀다원은 문을 닫았다. 한 달여 뒤 시인 전봉래는 광복동 인근 스타다방에서 ‘그리운 사람에게 보낸다’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아까운 예술인들과 함께 밀다원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었다.

밀다원시대에 대한 부산 문예인들의 그리움은 여전하다. 암울했던 피란시절 수많은 예술인들이 좁은 공간에 모인 시기였다. 김동리기념사업회는 지난해부터 광복동에서 ‘밀다원시대 문학제’를 열고 있다. 이들은 지난 17일 밀다원이 있던 광복로 일대에서 시민들에게 김동리 선생의 문학전집을 무료로 나눠주고 중구청에서 토론회도 열었다. 채문수 김동리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역사를 재조명하고 문화예술공간으로서 광복로가 가지는 의미와 가치를 공유하자는 취지로 지난해부터 시작했다”며 “내년부터는 부산소설가협회가 맡아 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부산의 명소인 용두산공원은 광복동을 굽어보며 오랜 기간 함께 한 공간이다.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오는 용의 머리에 해당한다고 해 명명된 용두산은 1954년 대화재로 소실된 후 새롭게 조성됐다. 공원에 위치한 높이 120m의 부산타워는 부산의 상징이자 오랜 랜드마크였다. 부산시가지와 부산항을 조망할 수 있고 맑은 날이면 멀리 대마도까지 내다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또 일제강점기인 1929년 식민지 수탈기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으로 사용된 건물도 광복동에 있다. 이곳은 1949년 미국 해외공보처 부산문화원이 됐다가 부산시민의 끊임없는 요구로 1999년 반환, 현재는 부산근대역사관으로 조성됐다. 개항기 부산과 일제의 부산수탈, 근현대 한미관계 등 부산 역사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초량왜관 당시 선착장이 있던 곳으로 돌로 만들어진 담벼락이 있는 봉아주차장, 초량왜관 책임자가 머물렀던 관수사 터, 초량왜관 터 등은 보존가치가 높은 곳이다.

광복동과 이웃한 부산국제영화제광장(남포동), 보수동책방골목(보수동), 부평깡통시장(부평동), 자갈치시장(남포동) 등은 부산을 상징하는 또 다른 명소다. 부산=정치섭기자 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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