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퍼드대학 인지언어학 교수 디보도와 보로디츠키의 논문(2011년)에 실린 실험들 가운데 하나를 간략하면 다음과 같다. 실험자들은 성별, 나이, 학력, 이념 등과 무관하게 피실험자들을 선발했다. 그 중 절반에게는 ‘범죄는 맹수다’라는 문장이 들어간 글을 읽게 하고, 나머지 절반에게는‘범죄는 바이러스다’라는 문장이 들어있는 같은 글을 읽게 했다. 이후 모두에게 한 마을에서 증가하고 있는 범죄에 대한 대응책을 제시하도록 했다.
결과는, 범죄를 맹수에 비유하는 문장이 든 글을 읽은 사람들은 범죄자의 색출 및 검거를 가장 중요한 대처 방안으로 제시했다. 반면에 범죄를 바이러스에 비유하는 문장이 든 글을 읽은 사람들은 빈곤을 포함한 범죄의 근본적 원인을 제거하고, 마을이 그 원인에 ‘감염되지 않도록’ 사전예방 하는 방안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이 실험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증명한 사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지난 16일 프랑스 파리 인근 베르사유궁에서 열린 상ㆍ하원 합동연설에서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지금 프랑스는 전쟁 중”이며 응징은 “무자비”할 것이라고 선포했다. 이어 “승리를 위해 미국과 러시아도 하나의 연합군으로 맞서 싸우자. 공화국 만세, 프랑스 만세”를 외치며 연설을 마쳤다. 그러자 900여 여야 의원들이 모두 박수를 쳤고, 누군가가 시작한 국가 ‘라 마르세예즈’를 합창했다. 17일 일간지 르 피가로는 “무척 장엄한 장면이었다”고 보도했고, 당선 후 바닥을 치던 올랑드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상승했다.
무고한 민간인들을 학살한 이슬람국가(IS)의 반인륜적 테러에 대한 대응이라는 점에서 열 번 이해하고 백 번 공감한다. 그럼에도 이 기사를 보며 1095년 11월 27일 교황 우바르누스 2세가 프랑스 클레르몽에 있는 주교좌성당에서 했던 십자군 원정 참여 독려 연설을 문득 떠올린 사람이 나뿐일까? 그 때도 누군가의 입에서 “신의 뜻이시다”라는 말이 튀어나왔고, 이 말 한 마디가 대륙을 피로 물들인 원정을 성전(聖戰)으로 미화하여 이후 200년 동안 십자군들이 저지른 약탈, 방화, 파괴, 강간, 살육을 정당화했다.
‘대(對)테러 작전’에 ‘전쟁’이라는 은유를 사용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을 구성한다면, 그것은 옳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럴 경우 승리를 위한 모든 종류의 폭력, 파괴, 학살 등이 정당화되고, 대테러 전략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야 할 ‘사전예방 조치’와 ‘근본적 해결책’이 시야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지난 1월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 직후 올랑드 대통령은 프랑스 청년을 테러리스트로 만든 사회적 폐단을 언급했는데, 이번엔 그런 이야기가 아예 없는 것이 그래서다.
테러는 전쟁과는 다르다. 핵항공모함과 전폭기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설령 IS를 섬멸한다고 해도 시리아 내전,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 대우와 같은 근본적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 한, 또 다른 테러조직들이 생겨날 것이다. 테러는 은폐되어 유동하는 위험이다. 파리 테러에 앞서 이라크와 터키 당국이 테러에 관한 정보를 프랑스와 서방국가들에 여러 차례 제공했음에도 막는 데 실패했다. 이것이 테러에 대한 대응을 맹수보다 바이러스에 대처하듯 실행해야 하는 이유다.
9ㆍ11 테러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은 ‘테러와의 전쟁’을 실행해왔다. 그러나 17일 호주 경제평화연구소가 발표한 세계 테러리즘 보고서에 의하면, 지난 해 테러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3만 3,658명으로 15년 전보다 10배나 증가했고, 테러에 대응하기 위해 지불한 비용은 529억 달러로 9ㆍ11 테러가 일어난 2001년보다도 많았다. 대테러 작전을 전쟁으로 간주하고 진행해온 모든 전략들이 효과가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통계들이다.
파리를 위해 기도한다. 그러나 테러가 없는 세상을 진정 원한다면, 대테러 작전을 전쟁으로 선포하는 언어부터 바꿔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테러를 뿌리부터 뽑을 수 있는 방안들이 모색될 것이기 때문이다.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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