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패닉 표를 포기하는 대신 흑인표를 공략한다.’
히스패닉 이민자를 범죄자 취급하는 막말로 히스패닉계 미국 유권자들에게 공적(公敵)이 돼버린 도널드 트럼프가 이를 만회할 대책을 준비 중이다.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공화당 예선 선두를 질주 중인 그는 히스패닉 유권자를 포기하는 대신 남미계 이민에게 밀려 정치ㆍ경제적 입지가 약화한 흑인을 끌어들이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25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다음주 뉴욕 맨하튼 선거본부에서 흑인 종교지도자 100명이 트럼프에 대한 지지선언을 할 예정이다. 이 신문은 지지선언에 앞서 트럼프가 다음 주 월요일(30일) 종교 지도자들과 비공식 만남을 가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하이오주의 대럴 스콧 목사는 “트럼프가 차기 대통령으로 가장 적합한 후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했던 스콧 목사는 “개인적으로 만난 본 결과, 트럼프 후보에게서 인종차별적 성향을 발견할 수 없었으며 침체된 경제를 살릴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 “트럼프 후보로부터 교회 헌금이나 기부금을 단 한 푼도 받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미국 정가에서는 흑인 지도자들의 지지선언이 트럼프의 대통령 가능성을 높여준다고 분석하고 있다. 멕시코 이민자를 범죄자로 몰아붙여 ‘히스패닉’ 표심을 잃어 버린 배경에는 ‘흑인’ 표를 겨냥한 선거 전략의 핵심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사회에서는 남미계 이민자의 급격한 유입으로 중산층 이하 백인뿐만 아니라 흑인들의 불만도 크게 고조된 상태다. 주요 인종 가운데 평균 소득에서는 최하위지만 상대적으로 많은 인구 때문에 정치적 영향력은 백인 다음이었으나, 최근에는 정치적 영향력도 히스패닉에 밀려 3위로 밀려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자살행위처럼 보였던 히스패닉에 대한 트럼프의 ‘막장 발언’뒤에는 중산층 이하 백인뿐만 아니라 민주당 성향이지만 히스패닉에게 반감을 품고 있는 흑인 유권자까지 규합하려는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미국 인구 3억1,890만명 중 백인(63%)을 제외하면 히스패닉(16%)이 2위이지만, 3위로 밀려난 흑인(12%)의 비중도 여전히 무시할 수 없다.
워싱턴포스트도 일자리와 주택, 정치적 영향력 등에서 두 인종의 경쟁 관계를 이용해 트럼프가 백인 계층의 절대적 지지와 함께 흑인을 끌어들여 히스패닉 때리기에 따른 ‘감표’를 상쇄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고 분석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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