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김영사ㆍ636쪽ㆍ2만2,000원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사피엔스’(김영사)는 인류 역사 이래 학문이 몰두해 온 이 난제에 정교하고 명료한 대서사로 답한다. 무명의 이스라엘 역사학자였던 유발 노아 하라리를 일약 스타덤에 올린 저서이기도 하다. 2011년 이스라엘에서 출간된 뒤 판매 추이가 심상치 않더니, 영미권이 뜨겁게 반응했다.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를 비롯 제레드 다이아몬드, 데미안 허스트 등 명사들이 보인 관심도 책을 알리는데 한 몫 했다.
중세 전쟁사 전문가인 저자를 이끈 호기심은 하나다. “몇만 년 전의 지구에는 적어도 여섯 종의 인간이 살고 있었다. 여기에서 이상한 점은 옛날에 여러 종이 살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 딱 한 종만 있다는 사실이다.”
변방의 유인원 호모 사피엔스가 어떻게 이 행성 먹이사슬의 정점에 섰는지를 탐구하는 것으로 지적 여정을 시작하는 글은 인류학, 생물학, 역사학, 경제학, 심리학, 현대과학 등을 종횡무진하며 인류의 시원, 진보, 미래를 조목조목 짚어 나간다.
저자는 인간 진로를 이끈 배경에 ‘세 가지 대혁명’을 꼽는다. 인지혁명(7만 년 전), 농업혁명(약 1만2,000년 전), 과학혁명(약 500년 전)이다. 인지혁명은 많은 부분이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지만, 원시인류의 행동 패턴이 수십만 년간 고정돼 있던 데 비해 사피엔스는 불과 10~20년 만에 인지혁명이라 이룰 만한 변화를 겪었다. 세계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하고 사회적 관계를 형성할 줄 알았던 이들은 사냥, 협력 등을 계획했다. 이 변화는 결정적 차이를 유발했고 이어진 농업혁명, 과학혁명의 가도를 타며 인류는 질주해왔다.
또 진보를 재촉해온 일곱 가지 촉매제로 불, 뒷담화, 농업, 신화, 돈, 모순, 과학 등을 꼽는다. 불을 장악한 인간은 언어(뒷담화)를 통해 공동체를 구성하고, 농업을 통해 스스로 주체하기 어려운 인구증가에 직면한다. 이들을 통제해온 강력한 수단은 종교, 권력 등의 신화. 농업의 발달은 부의 축적으로, 돈에 대한 맹신은 부조리와 모순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이들 개념을 골자로 한 방대한 지적 회고를 통해 저자가 묻고자 하는 것은 한마디로 “그래서 행복하냐”는 것이다. 저자의 질문은 집요하다.
“오늘날 인류는 예전이라면 동화에서나 들어보았을 부를 누리고 있다. 과학과 산업혁명 덕분에 인류는 초인적인 힘과 실질적으로 무한한 에너지를 갖게 되었다. (…) 하지만 우리는 더 행복해졌는가? 지난 5세기 동안 인류가 쌓아온 부는 우리에게 새로운 종류의 만족을 주었는가? 무한한 에너지원의 발견은 우리 앞에 무한한 행복의 창고를 열어주었는가? 인지혁명 이래 험난했던 7만 년의 세월은 세상을 더욱 살기 좋은 것으로 만들었는가?”
우리가 이 질문에 쉽사리 “그렇다”고 답하기 어려운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 그는 답한다. 과학혁명이 신의 영역을 넘보는 수준의 기술을 인류에게 선사했지만, 정작 우리는 정말 우리가 그러한 진일보를 원하는지조차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류는 목적이나 의도 같은 것 없이 진행되는 눈먼 진화과정의 산물이다. 우리의 행동은 뭔가 신성한 우주적 계획의 일부가 아니다. (…)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부여하는 가치는 그것이 무엇이든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혁명의 급행열차에 올라탄 인간이 만들어갈 미래는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발명을 맹신하는 것도, 발명의 어두운 그림자에만 천착하는 것에도 반대하는 저자는 지금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오직 사유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되묻는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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