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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자본주의’라는 거짓말과 가난을 지배하는 권력의 농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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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자본주의’라는 거짓말과 가난을 지배하는 권력의 농간

입력
2015.11.2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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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을 팝니다

라미아 카림 지음ㆍ박소현 옮김

오월의봄 발행ㆍ384쪽ㆍ1만7,000원

가난이 조종되고 있다

에드워드 로이스 지음ㆍ배충효 옮김

명태 발행ㆍ448쪽ㆍ2만2,000원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 말은 종종 국가의 책임을 덜어주는 구실로 통한다. 국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구석을 챙기는 비영리단체나 사회운동을 칭찬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나란히 나온 두 권의 책 ‘가난을 팝니다’와 ‘가난이 조종되고 있다’는 이런 생각이 틀렸을 뿐만 아니라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방글라데시 출신 인류학자 라미아 카림(미국 오리건대 인류학과 교수)이 쓴 ‘가난을 팝니다’는 소액 대출로 빈민의 자립을 돕는다는 그라민은행 등 이른바 ‘착한 자본주의’의 착하지 않은 민낯을 폭로한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그라민은행을 설립한 방글라데시 경제학자 겸 사회운동가 무함마드 야누스는 2006년 노벨평화상을 받았지만, 그가 이 일을 처음 시작한 마을에서는 ‘사채업자 유누스’라는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그라민은행은 ‘가난을 파는’ 기업에 불과하다. 책은 그라민은행처럼 소액금융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방글라데시의 또 다른 비정부기구 세 곳, BRAC, 쁘로쉬까 인간발전센터, 사회발전협회(ASA)도 포함해 이들의 활동이 빈민 특히 가난한 여성의 삶에 미친 영향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저자가 수년 간 여러 차례 현지 조사를 바탕으로 분석하고 파악한 실상은 외부에 알려진 것과 많이 다르다. 빚 독촉에 시달린 채무자의 자살과 야반도주가 속출하는가 하면 빌린 돈으로 사채업을 해서 돈을 버는 사람도 나왔다. 그라민은행이 자랑하는 대출 회수율 98%에는 어두운 비밀이 있다. 친족관계인 마을 사람들에게 연대책임을 지우고, 못 갚거나 상환이 늦어지면 동네에서 얼굴을 들 수 없게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고, 집을 부순 뒤 그 자재를 팔아 갚게 하기도 했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명예와 친족관계, 마을공동체를 채권 추심에 이용한 것이다. 그라민은행의 이자율도 알려진 것과 달리 꽤 높다고 한다.

그라민은행을 설립한 무함마드 유누스가 여성 대출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그라민재단 홈페이지
그라민은행을 설립한 무함마드 유누스가 여성 대출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그라민재단 홈페이지

특히 여성들은 더 힘들어졌다. 대출을 받는 것은 여성이지만 실제 사용자는 대부분 남성이었다. 남편들은 아내에게 돈을 빌려오라고 하고 그 돈을 써버리지만, 갚는 건 여성의 몫이다. 저자는 소액금융 NGO들이 주로 여성을 상대로 일을 해온 것은, 여성이 남성보다 미더워서가 아니라 여성의 취약한 지위를 이용한 것이라고 진단한다.

어쨌든 덕분에 그라민은 성공했다. 자회사가 50개가 넘는 대기업으로 성장했고, 사업 영역을 다각화했다. 옥수수도 못 먹는 굶주린 빈민들에게 다국적기업 다농과 합작회사를 세워 요구르트를 판다. 썩은 면화씨를 팔아서 인도 농민 수천 명을 자살하게 만든 몬산토의 종자와 비료를 사야 대출을 해주겠다고 했다가 거센 비난을 받고 철회하기도 했다. 그런 그라민의 성공에 자극 받아 남아시아 거대 NGO들의 거의 40%가 소액금융 업체로 바뀌었다고 한다. 빈민에게 돈 빌려준 목적이 그들을 소비자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봐도 그리 틀리지 않겠다. 영향력과 덩치가 커진 NGO는 실패한 국가 방글라데시에서 ‘그림자국가’ 역할을 하고 있다.

빈곤 문제에서 국가의 책임은 결국 정치와 연결된다. 미국 사회학자 에드워드 로이스가 쓴 ‘가난이 조종되고 있다’는 가난의 뿌리가 돈보다 권력의 불평등에 더 깊이 착근하고 있음을 밝혀낸다. 저자에 따르면 불평등의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불평등에서 이득을 얻는 사람들”에게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권력을 갖다 바쳤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끔 자선을 베풀지만, 가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나 노력은 불순한 것으로 몰고 자력갱생을 강조함으로써 불평등한 현재를 유지하고 강화한다. 때문에 정말 중요한 것은 부의 재분배가 아니라 권력의 재분배라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미국의 현실을 분석한 책이지만 한국에 대입해도 새겨 들을 지적과 제안이 많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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