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갑윤 국회부의장 등 새누리당 소속 의원 32명이 최근 발의한 이른바 ‘복면금지법’을 두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집회ㆍ시위 참가자의 복면 착용으로 시위대가 과격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만큼 이를 금지해 불법 시위를 막아보겠다는 게 개정안의 취지다. 하지만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ㆍ시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와 야당의 거센 반발 때문에 국회 상임위(안행위)와 본회의 문턱을 넘기는 힘들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전 정부서도 공방 거듭
황진하 새누리당 사무총장은 27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복면금지법안은 불법ㆍ폭력시위자를 가려내기 위한 불가피한 대책”이라며 “인권 침해 운운하며 반대하는 야당의 모습에 개탄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집회ㆍ시위의 자유를 대단히 위축시킬 수 있는 위헌적 발상”이라며 “복면금지법 추진에 앞서 정부는 국민이 복면을 쓰고 거리로 나설 이유가 없도록 민생을 돌보길 바란다”며 역공을 펼쳤다.
여야 공방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참여정부 시절이던 2003년 정부가 복면 집회를 금지하는 집시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표현의 자유와 인권침해를 논란이 일면서 무산됐고, 2006년 10월에도 한차례 비슷한 집시법 개정안이 제출됐지만 역시 논란 끝에 폐기됐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광우병 촛불집회 이후인 2009년 1월 신지호ㆍ정갑윤 의원 등이 마스크 착용 금지 내용의 집시법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마찬가지로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 때문에 상임위 논의 테이블에 오르지 못했다.
진보든 보수든 여당이 됐을 때는 복면금지법을 추진했지만 번번히 야당의 반대에 부닥친 셈이다. 헌법 기관의 결정도 한몫 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03년 논란 당시 “참가자는 참가의 형태와 정도, 복장을 자유로이 결정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낸 바 있다. 마크스 착용을 금지할 수 없고, 마스크를 썼다고 해서 처벌할 수 없다는 뜻이다. 국가인권위도 2009년 당시 신지호 의원 법안으로 논란이 일자 “복면을 쓰고 집회에 참석하면 불법 폭력 집회를 하려 한다는 잘못된 전제를 기초로 하고 있어 집회ㆍ시위의 자유를 중대하게 위축시키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 논란 종식을 앞당겼다.
선진국들 복면금지? 한국과 사정 달라
새누리당은 이번만큼은 다른 기세로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강도 높게 주문하면서 탄력을 받고 있다. 박민식 의원은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법안은 무조건 마스크 착용 금지가 아니다”며 “폭력을 은닉하기 위한 방편으로 가면을 쓰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은 또 해외 사례에 터를 잡아 입법에 속도를 내고 있다. 김무성 대표는 1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미국,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선진국도 국가 안보와 질서 유지를 위해 복면 금지가 합헌”이라며 법안 도입의 필요성을 거듭 주장했고, 정갑윤 의원도 입법조사처의 도움을 받아 복면시위를 금지하고 있는 이들 나라들을 소개했다.
하지만 야당과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이는 각국의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주장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일부 주에서 복면 착용 시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다른 사람의 권리나 특권을 침해할 목적으로 열리는 시위로 제한돼 있을 뿐 일반적인 집회나 시위의 복면 착용을 금지하는 새누리당의 법안과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다. 새정치연합의 유승희 최고위원은 “미국의 경우 하얀 고깔 모양의 두건은 쓰고 흑인 등에 테러를 자행하는 백인우월주의 극우단체 KKK 때문에 생긴 법이고 독일의 경우도 우리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과격한 극우 나치주의자, 홀리건 등의 폭동 등 복면 시위를 금지하고 있는 특수성 때문”이라며 “우리와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
정민승기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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