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월 금통위원 7명 중 4명 일괄교체,
안정적 통화정책 차질 우려
이대로면 4년 주기 반복될 판…
“사태 심각성 깨닫고 대책 마련해야” 지적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7명 중 4명이 한꺼번에 교체되는 이른바 ‘금통위 리스크’가 불과 4개월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관련 당사자들의 무관심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금통위원의 임기가 한은법에 규정된 만큼 근본적인 사태 해결은 국회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여야 국회의원들은 물론, 한은법 소관부처인 기획재정부, 심지어 피해 당사자인 한은조차 뒷짐만 지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 금리인상 등 글로벌 경제환경의 대 변혁기에 통화정책이 크게 흔들릴 거란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커지는 금통위 리스크
1일 한은에 따르면 하성근, 정해방, 정순원, 문우식 금통위원의 임기가 내년 4월20일 동시에 만료된다. 한은법상 금통위원은 연임도 가능하지만, 관례상 연임 가능성은 희박해 결국 4명이 동시 교체될 공산이 크다. 이들 4명의 금통위원 역시 2012년 4월 동시에 ‘새내기’ 금통위원으로 합류했다.
한은 안팎에서 이런 상황을 ‘리스크’라고 보는 이유는 금통위원직의 무게와 시기적 특수성에 있다. 금통위원들이 다수결로 정하는 기준금리 등 각종 통화신용 정책은 경제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 경제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해 웬만한 전문가도 초기엔 선뜻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적응기를 거치게 마련이다. “자기만의 시각을 가지려면 2년은 걸린다”(전진 금통위원)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특히 내년 4월은 미국의 금리인상이 본격화되고, 유럽의 양적완화 흐름 반전이 예상되는 등 글로벌 경제의 일대 혼란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자칫 문외한이나 낙하산형 인사가 대거 선임될 경우, 통화정책에 큰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극단적으로는 4명의 신임 위원이 뭉치면 전체 금통위 결정을 뒤집을 수 있는 구조이기도 하다.
이대로라면 최소한 4년 주기로 같은 리스크를 반복해야 할 상황. 게다가 내후년 6월 임기가 끝나는 부총재의 금통위원 임기가 3년임을 감안하면 2020년엔 무려 5명의 금통위원이 2개월 시차로 일괄 교체된다. 때문에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대체로 금통위원의 교차임명을 의무화하고 있다. 일례로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이사를 2년 마다 1명 이상은 교체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쏟아지는 우려와 대안
한은 주변에선 다양한 대안들이 나온다. 우선 법 개정 없이 내년 4월 퇴임자 중 한 두 명을 연임시켜 교체 규모를 분산시키자는 의견이 나오지만 이는 전적으로 임명권자(대통령)의 뜻에 달린 만큼 예단하기 어렵다. 현재의 기형적인 4명 일괄교체 구조가 이명박 정부 시절 2년 간이나 금통위원 한 자리를 공석으로 비워두다 4명을 한꺼번에 임명한 데서 비롯된 데서 보듯 정권이 금통위원을 입맛대로 이용하려는 유혹은 여전히 강하다.
때문에 이 참에 한은법을 손질해 위험의 원인을 제거하자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박원석 정의당 의원은 지난 8월 ▦금통위원이 임기를 마치거나 사고로 결원될 경우 30일 전후로 후임추천을 의무화해 금통위원 공백을 막고 ▦내년 4월 바뀌는 4명 중 2명(기재부 장관, 금융위원장 추천)은 1회에 한해 임기를 3년으로 제한해 향후 교체시기를 다양화하자는 한은법 개정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정작 손 놓은 당사자들
하지만 정작 이런 리스크를 해결해야 할 당사자들은 한가하기만 하다. 국회 기재위에선 산적한 뜨거운 법안들에 밀려 한은법은 뒷전으로 밀려난 상태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고작 한차례 법안 소개 정도만 됐는데, 3일 예정된 소위원회 심의에서도 진지한 논의를 기대하긴 어렵다. 박원석 의원은 “국가 경제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인데도 여당은 정부의 의견에 무작정 따르는 경향이 심하고, 야당은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기재부 역시 국회의원들의 무관심에 기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기재부는 앞서 박 의원의 개정안에 대해 ‘금통위원의 임기를 1회성으로라도 차별화하는 것은 독립성을 해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제시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날 “그간 특별한 입장변화는 없는 상태이며 국회 논의를 기다리는 상황”이라고만 말했다.
금통위 리스크를 떠안아야 할 당사자인 한은 역시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법 개정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역시 적극 행동에 나서길 꺼리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한은 인사들은 “기회가 될 때마다 한은의 입장을 국회에 전달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최근 정순원 금통위원은 이와 관련, “교체시기 분산이 바람직하긴 하지만 동시에 바뀐 현 4명 금통위원도 잘 적응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 전직 금통위원은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금통위 리스크 해소는 20대 국회에 가서나 새로 논의해야 할 상황”이라며 “국회와 정부가 금통위의 중요성을 인식한다면 금통위원 교체시기 분산은 물론, 임기확대 등까지 중앙은행의 위상을 종합 고려한 개선안을 시급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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