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예산안이 법정시한을 넘겨 3일 새벽에야 가까스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회는 2일 여당이 쟁점법안과 예산안 처리를 연계하는 바람에 하루 종일 우왕좌왕 혼란을 겪었다. 여야 지도부는 당 내부의 충분한 협의와 공감대 없이 졸속으로 합의했다가 편법적인 국회의장 직권상정 형태로 쟁점 법안들을 처리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정치력과 협상력 부족으로 안 좋은 선례를 남긴 것이다.
여야 원내지도부는 이날 새벽까지 진행된 협상에서 5개 쟁점 법안과 예산안을 함께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이상민 법사위원장이 법사위 숙려기간 5일을 규정한 국회법 위반이라며 상정을 거부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관련 상임위에서는 법안심사권 침해 논란과 함께 여야 의원들 간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새해 예산안과 쟁점 법안들은 본회의 개회 직전 눈 가리고 아옹식의 변칙적인 법안 심사기간 지정을 거쳐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통해 처리됐다.
이번에 새누리당은 쟁점 법안 처리에 응하지 않으면 새해예산안을 정부 원안대로 통과시키겠다고 야당을 압박했다. 예산안과 다른 쟁점현안의 연계는 원래 야당이 전가의 보도처럼 쓰던 전략이었지만 국화선진화법에 따라 여당의 무기가 됐다. 새누리당은 정 의장이 정기국회 종료(9일) 하루 전인 8일께까지 5개 쟁점법안 심사기간을 정하고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직권상정하겠다는 중재안을 냈지만 이마저 거부했다. 여당이 국회의장의 중재조차 무시하며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데는 청와대의 강한 압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지나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집권여당이 새해예산안과 법안 처리를 연계하는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야당이 ‘협박정치’라고 반발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야당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법안처리를 회피하는 바람에 연계 전략이 불가피했다고 주장할지 모르나 그 같은 발상 자체가 문제였다. 새정치연합도 자신들이 확보한 예산안에 발목이 잡혀 속절없이 여당에 끌려 다니는 나약한 모습을 보였다.
예산안 심의과정 자체도 문제가 많았다. 여야 모두 내년 총선에 도움이 되는 예산확보에만 관심이 컸고 심도 있는 심의를 통해 낭비요인을 찾아내 삭감하는 국회 본연의 역할에는 소홀했다. 예산안조정 소위를 구성할 때는 위원 숫자를 늘리려다 거센 여론의 반발에 부딪혔고, 의원들에게 돌아가며 지역구 예산확보 기회를 주기 위해 소위 위원 사ㆍ보임 꼼수를 부리다가 빈축을 사기도 했다. 특정지역과 실세 예산 논란도 어김 없이 재연됐다. 이러고서도 다들 내년 총선에서 표를 달라고 손을 내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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