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다가오면 여의도는 온갖 설이 난무한다. 각계각파가 저마다 제 이익에 맞는 주장을 펼치기 때문인데 그 중 가장 익숙한 게 ‘용퇴론’과 ‘험지론’이다. 4ㆍ13 총선이 넉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여야를 막론하고 어김없이 두 주장이 또 스멀스멀 살아났다. 두 주장 모두 거물이 타깃이라는 점에서 닮았지만 용퇴론은 ‘지는 해’에, 험지론은 ‘뜨는 해’에 적용된다는 점이 큰 차이다.
“서청원은 친박의 맹구(猛狗)?”
여당에서 용퇴론의 주인공으로 우선 거론되는 인물은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이다. 7선으로 여당뿐 아니라 19대 국회를 통틀어 최다선인 친박계의 좌장이다. 그런 서 최고위원을 둘러싼 분위기가 심상찮다. 그것도 친박계 내부에서 원심력이 강해지고 있다.
한 친박계 핵심 의원은 사석에서 서 최고위원의 얘기가 나오자 대뜸 ‘구맹주산(狗猛酒酸)’이란 사자성어를 꺼냈다.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이야기로 “개가 사나우면 술이 쉰다”는 뜻이다. 중국 송나라에 술을 아주 잘 빚는 이가 있었는데 기이하게도 그 주점에 손님이 들지 않아 마을의 현명한 노인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네 집의 사나운 개가 손님만 보면 짖으니 누가 오겠느냐”고 답했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이 고사를 전하면서 “서 최고위원이 친박계의 ‘맹구(猛狗)’”라고 말했다. 친박계를 위해 서둘러 용퇴시켜야 한다는 의미다.
최근 ‘공천 룰’ 등을 둘러싸고 김무성 대표에게 으르렁대는 서 최고위원을 두고 “우리의 중론이 아니다”는 친박계의 불만이 터져 나온 터였다. 친박계에선 ‘맹구가 2선 후퇴해야 신박(신진친박)이 든다’는 말까지 나온다. 또다른 친박계 핵심 의원은 “우리도 위에서 불출마를 해야 비박계에도 같은 주장을 할 수 있지 않겠나? 총선 승리해야 할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대선 넉 달 뒤 치러진 2008년 18대 총선 공천 때도 비슷한 주장이 여당인 한나라당에서 나왔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국회 부의장이 총선에 불출마해야 한다는 ‘55인 선언’이었다. 당시 친이계였던 남경필ㆍ정두언 의원 등이 도모한 반란이었다. 이 전 부의장은 결국 ‘55인 선언을 거부하는 출마 선언’을 했고 이 대통령이 묵인하면서 사달은 끝이 났다. 하지만 서 최고위원이 친박계에서 용퇴론이 공개적으로 터져나올 경우 버텨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총선 승리 이끌려면 ‘바보 무대’ 돼라”
험지론은 ‘거물일수록 격전지나 불리한 지역에 출마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올해 험지론은 서울시당위원장이자 새누리당 소장파인 김용태 의원이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서울 지역구 48곳 중 새누리당은 17곳에 불과하고 서울시장은 물론 구청장 시ㆍ구 의원 대다수가 야당인 상황에서 바람을 일으키려면 김 대표가 지역구이자 새누리당 텃밭인 부산 대신 서울의 열세 지역에 출마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비박계 물밑에선 그간 김 대표가 서울 출마를 결단해야 야당에서도 거물급 인사가 맞붙을 테고 이는 총선 흥행 성공과 승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공공연했다.
이미 노무현 전 대통령이 험지 출마로 신화를 만든 예가 있다. 노 전 대통령은 낙선을 무릅쓰고 부산에 잇따라 출마, 지역주의란 벽에 도전해 ‘바보 노무현’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그 바보스런 고집이 국민을 감동시켰고 결국 대선 승리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차기 대선을 바라보는 김 대표가 부산을 버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미 김 대표도 그럴 뜻이 없음을 밝혔다. 김 대표 쪽에선 세 가지 이유로 고개를 내젓는다. “영도는 결코 쉬운 지역이 아니다. 서울 험지에 나가면 전국 선거를 이끌 수 없다. PK(부산경남)에서 인정 받아야 대선에서 승산이 있다.”
그럼에도 김 대표에게 험지 출마를 요구하는 건 어찌됐든 감동을 주는 총선을 만들라는 주문이다. 용퇴론과 험지론, 이번 20대 총선에선 어느 게 참명제로 증명될지 지켜볼 일이다.
김지은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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