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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학교를 둘러싼 ‘판’을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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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학교를 둘러싼 ‘판’을 바꿔야 한다

입력
2015.12.06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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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청소년들 사이에서 ‘헬조선’ ‘탈조선’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땅을 지옥에 비유하며, 그럴 수만 있다면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과 정서가 응축되어 있는 표현들이다. 그 정도로 스스로의 삶을 불안해하고, 행복과는 거리가 먼 어떤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삶의 만족도가 OECD 회원국 중 최하위이며, 자살률이 최고 수준인 게 결코 우연이 아님을 새삼 깨닫게 된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된 걸까? 여러 원인을 들 수 있겠지만, 교육이라는 공통의 경험을 빼놓고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ㆍ고등학교, 대학교가 확실히 제 기능을 상실했다. 학교에서의 성취를 바탕으로 한 계층 상승의 경험이 이제 낯선 일이 되어버렸다. 설상가상으로 학교는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만 반복할 뿐 학생 개개인의 교육적 필요와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

‘금수저’ ‘흙수저’ 얘기에서 알 수 있듯 죽기 살기로 공부해봐야 별 무소용이다. 그보다는 어떤 부모 밑에 태어났느냐가 더 중요하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문화자본이 학생의 학업 성취 등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능력주의가 허구로 판명되고 있는 현실에서 학교를 무대로 처음부터 승자와 패자가 분명한 불공정한 ‘게임’이 강요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학교의 모습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계층 대응적인 서열화다.

‘부자학교’와 ‘가난한 학교’로 완전히 갈리고, 학교가 아이들의 등급을 매기는 장소로 전락하였다. 학벌사회에서 가파르게 서열화되어 있는 대학이 학교 서열화를 추동하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해왔다. 서울 소재 특목고 등 부자학교 출신이 아니면 서울대를 들어가기 어려운 시대이다. 어쩔 수 없이 경쟁에 뛰어들기는 하지만 학교와 대학을 ‘기회의 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학교와 대학은 이런 현실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노오력’하라고 다그칠 뿐 ‘교육’에는 관심이 없다. 아이들의 재능이나 흥미가 무엇인지 묻지 않는다. 미래의 꿈은 말할 것도 없다. 자연히 개개인의 교육적 필요에 응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점수와 등수 경쟁을 넘어 개인의 적성과 재능에 맞는 미래를 모색하고 준비하는 교육적 경험을 제공하는 데 너무 인색하다. 이런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 우리는 무얼 해야 하는 걸까?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거짓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노력하면 공부는 잘 할 수 있다. 하지만 잠 안자고 ‘노오력’한다고 해서 점수와 등수 경쟁에서 모두 승자가 될 수는 없다. 더욱이 가난한 부모를 둔 대다수 학생들의 경우 그 가능성은 훨씬 더 떨어진다. 이것이 진실이다. 그러니 점수와 등수 경쟁이 아닌 의미 있고 행복한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적성과 흥미에 맞는 일을 찾아 준비해나가는 아이들을 격려해고 인정해주어야 한다.

실패의 책임이 온전히 너 자신에게 있다는 주술 또한 당장 거두어들여야 한다. 문제의 원인을 호도하고 책임지지 않으려는 사회적 공모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무서운 것은 이런 저주가 ‘실패’를 인정하라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결핍과 불편함도 감수하고, 그 어떤 요구나 권리도 주장할 자격이 없다고 겁박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학교와 사회가 이렇게 무서운 올가미를 아이들에게 씌우고 있다는 절절한 인식에서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

당연히 승자가 모든 것을 다 가져도 좋다는 정글의 논리 역시 폐기되어야 한다. 지난 20여 년간 우리 사회에 그런 몰염치가 만연되면서 괴물을 키어왔다. 승자독식의 논리로 무장한 소수의 괴물과 열패감에 사로잡힌 다수의 노예로는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조차 보장받기 어렵다. ‘노력해도 안 되는 현실’에 대한 비관론이 청년세대에 광범하게 확산되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유다. 부와 권력의 불평등을 줄이는 쪽으로 판을 갈지 않으면 대한민국에서 희망을 말해서는 안 된다는 진실 앞에 모두가 겸허해졌으면 한다.

김용일 한국해양대 교직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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