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에 스타트업(초기 창업기업) 열풍이 불고 있다. 그 중심에 미국 정보기술(IT)의 산실인 실리콘밸리가 있다. 그리고 실리콘밸리의 혁신력과 실행력은 어느때보다 강해지고 있다.
전세계에서 1조원 이상 가치를 인정받는 소위 '유니콘’스타트업을 집계하는 CB인사이츠의 유니콘 리스트에 오른 기업만 145개다. 이 기업들의 가치를 모두 합치면 590조원에 이른다. 이중 약 90개사가 미국에 자리잡고 있으며 이중 60여개사는 실리콘밸리와 그 인근에 자리잡고 있다. 전세계에서 급성장한 스타트업의 절반 가까운 숫자가 실리콘밸리라는 좁은 지역에 모여있는 것이다.
페이스북,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의 놀라운 성장
이 뿐만이 아니다. 실리콘밸리의 기존 공룡기업들은 '대기업병’을 앓기는 커녕 더욱더 강해지고 있다. 구글의 지주회사 알파벳은 지난 3분기에 전년대비 45% 가량 상승한 4조6,000억원의 순익을 올렸다. 이런 상승세로 구글의 시가총액은 요즘 611조원에 육박한다. 국내 대표기업 삼성전자의 3배에 이르는 기업가치다.
애플은 말할 것도 없다. 애플은 전세계 스마트폰순익의 94%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 애플은 한해 순익이 60조원을 헤아린다.
페이스북도 더 이상 단순히 사회관계형서비스(SNS)업체로 보기 힘들다. 전세계 15억명 이상이 사용하는 페이스북은 각 개인에게 차별화한 온라인 광고를 내보낼 수 있는 인류역사상 가장 효과적인 광고엔진이 역할을 하고 있다.
심지어 페이스북이 인수한 기업인 왓츠앱은 9억명, 인스타그램은 4억명이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연초대비 33% 급등한 페이스북의 시가총액은 340조원이다. 그야말로 진격의 페이스북이다.
실리콘밸리는 아니지만 역시 미서부 해안인 시애틀에 자리잡은 테크기업들도 잘 나간다. 특히 아마존은 지난 7월말 오프라인유통의 절대강자인 월마트를 제치고 미국 유통업계 시가총액 1위에 등극했다. 깜짝 놀랄만한 뉴스였다. 그런데 지금 두 회사의 시가총액을 다시 찾아보면 더 놀랍다. 아마존의 시가총액은 360조원, 월마트는 217조원으로 차이가 엄청나게 벌어졌다. 불과 4개월 만이다. 클라우드서비스로 수익을 극대화한 아마존의 주가는 연초대비 2배 이상 올랐고 디지털에서 계속 고전하는 월마트 주가는 연초대비 30% 하락했다. 온라인경제가 오프라인경제를 추월해 가는 상징적인 풍경이다.
심지어 마이크로소프트(MS)도 새로운 최고경영자(CEO)와 함께 부활 중이다. 홀로렌즈 등의 혁신 서비스를 선보이며 시가총액이 3년전과 비교해 2배 가까이 오른 500조원까지 다시 상승했다.
이처럼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테크기업들은 전성기를 구가중이다.
폴 그램의 와이컴비네이터가 뿌린 씨앗들
이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몇가지 이유를 생각해봤다.
우선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집어삼키는 시대’로 돌입했기 때문이다. 2007년 스티브 잡스가 혁신적인 휴대폰 ‘아이폰’을 발표한 뒤 전세계는 스마트폰을 마중물로 해서 급격하게 소프트웨어중심으로 변해가고 있다.
인류가 콘텐츠를 소비하고 자동차를 불러서 타고 쇼핑을 하는 등 모든 일상생활에 있어서 스마트폰에 설치된 응용 소프트웨어(앱)가 중심이 됐다. 그만큼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가진 회사가 더 큰 경쟁력을 갖게 됐다.
오래 전부터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기업이 즐비하고 최고 수준의 소프트웨어엔지니어들이 우글거리는 실리콘밸리가 이런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소프트웨어는 이제 전기자동차, 무인자동차 기술을 통해 자동차산업을 넘보고 있고 핀테크 기술을 통해 금융까지 먹어 치울 기세다.
두번째는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생겨나는 스타트업 속성 훈련소인 엑셀러레이터의 등장을 들 수 있다. 2005년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된 와이컴비네이터가 시초다. 이런 엑셀러레이터는 실리콘밸리에 역량있는 스타트업들이 더욱 몰리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현자로 불리는 폴 그램이 설립한 이 조직은 벤처투자회사이면서 스타트업을 속성으로 성장시키는 훈련소다. 매년 두번 각각 85개 내외의 초기 스타트업팀을 전세계에서 선발한다. 그리고 5,000만~1억원 사이의 소액을 투자한 뒤 이들을 실리콘밸리로 오게 한다.
3개월 동안 치열한 멘토링과 각종 교육 등을 통해 아이디어나 초기 단계의 제품 및 서비스를 시장상황과 소비자 필요에 맞게 만들도록 도와준다. 3개월 교육이 끝나면 졸업식 격인 '데모데이’행사를 갖는다.
실리콘밸리의 유수의 투자자들 앞에서 5분간 사업을 소개하는 자리다. 이 과정을 통해 와이컴비네이터는 가능성있는 스타트업을 더욱 매력적으로 포장한 다음 실리콘밸리에 쏟아놓는다. 일종의 스타트업 사관학교인 와이컴비네이터의 이 모델은 성장을 가속화해 준다는 의미의 '엑셀러레이터’로 불리게 됐다. 그리고 테크스타, 500스타트업 등의 액셀러레이터가 늘어나면서 이런 모델은 전세계로 확산됐다.
실리콘밸리 생태계의 진화
세번째는 현금동원력이 더욱 막강해진 실리콘밸리의 투자생태계다. 실리콘밸리만큼 스타트업들을 잘 감별해서 성공 가능성이 높은 회사로 바꿔 놓는 실력 있는 ‘병아리 감별사’ 투자자들이 많은 곳이 없다. 될 만한 선수를 찾아내 키우고 밀어 주는 최고의 실력을 가진 사람들이 우글거린다.
그런데 이런 투자생태계가 최근 더욱더 진화돼 초기스타트업에 엔젤, 엑셀러레이터, 마이크로벤처캐피털(VC)이 소액을 투자해 빠르게 성장시킨다. 그리고 성장한 스타트업을 전통적인 중견VC들이 받아서 수십, 수백억원씩 재투자한다.
요즘에는 글로벌 대기업 계열 벤처펀드와 공개기업에 투자하던 헤지펀드들까지 들어와서 우버, 에어비앤비 같은 공룡 스타트업에 투자해준다. 이들은 혁신기업들에게 “돈 걱정하지 말고 될 때까지 해보라”고 밀어준다. 단기 수익을 내는 것보다 거액을 투자해서 글로벌 스케일로 확장된 플랫폼 비즈니스를 만들도록 한다. 전세계 60여개국의 300여개 도시를 공략하는 우버에게 매번 1조원의 투자가 이뤄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네번째는 실리콘밸리로 모여드는 글로벌기업들의 존재다. 삼성전자만 해도 지난 9월 실리콘밸리에 대규모 건물 두 동을 완공하고 미래성장동력 발굴을 위한 혁신기지로 쓰고 있다. 벤츠, 토요타 등 세계적인 글로벌 자동차회사들도 모두 실리콘밸리에 혁신센터나 투자거점을 만들어 집결하고 있다. 테슬라, 구글, 애플 등이 무인자동차를 개발하며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해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 같은 회사들은 실리콘밸리 거점을 만들고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다섯번째는 서로 경쟁하며 도와주는 최고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스타트업이 늘어나면서 스타트업을 상대로 하는 각종 비즈니스도 잘 된다. 마치 160년전 샌프란시스코의 골드러시를 타고 금 캐러 온 사람들에게 청바지를 만들어 판매한 리바이스가 탄생했던 것처럼 수많은 스타트업을 상대로 하는 기업 대 기업(B2B)비즈니스로 거대스타트업이 되는 '슬랙’같은 회사 사례가 늘 있다.
마지막으로 혁신기업들의 제품을 얼리어답터가 되서 일찌감치 사용해주고 응원해주는 현지주민들의 힘이다.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은 지난 11월초 에어비앤비 규제법안에 대해서 예상을 뒤엎고 반대표를 던졌다. 전기차 모델인 테슬라의 ‘모델S’가 가장 많이 보이는 곳도 실리콘밸리다.
이렇게 파죽지세로 세계정복에 나서는 실리콘밸리회사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무조건 막을 수는 없는 법이다. 우리도 국내 기업생태계를 실리콘밸리같은 혁신생태계로 바꿔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대항마 격인 스타트업들이 많이 나오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실리콘밸리의 혁신 유전자(DNA)를 이해하고 우리 기업들이 배우고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행히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는 실리콘밸리기업들처럼 평등하고 투명한 조직문화를 실행하는 젊은 기업들이 많다. 이런 창의적인 젊은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스타트업 친화적인 기업생태계를 만들고 밀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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