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근경색 환자 4분의 1 정도가 통증 없어
며칠 전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 50대 남성이 119구급차에 실려왔다. 목이 답답하고, 체한 것처럼 속이 불편해서였다. 검사를 받던 이 남성은 갑자기 얼굴이 새파랗게 변하며 의식을 잃었다. 급성 심근경색이 온 것이었다. 이 환자에게 급성 심근경색의 전형적인 증상인 가슴 통증은 나타나지 않았다. ‘가슴통증=급성 심근경색’이라는 등식이 더 이상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처럼 가슴통증이 나타나지 않아도 급성 심근경색이 오는 경우가 전체 급성 심근경색의 25% 정도나 된다.
발병 후 4시간 이내 모든 심장근육 괴사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지면 가장 크게 늘어나는 질병이 바로 급성 심근경색이다. ‘돌연사의 주범’ 급성 심근경색은 그래서 12월에 가장 많이 발생한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 김효수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찬 공기에 갑자기 노출되면 혈관 수축, 혈압 상승, 심장박동수 증가 등 심장에 부담을 주는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겨울철에는 심근경색이나 협심증 위험이 높아진다”고 했다. 김 교수는 “특히 잠에서 깬 직후인 아침에는 심장의 부담이 최고조여서 대개 심장돌연사가 하루 중 아침에 많이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겨울철에 기온이 1도 떨어질 때마다 심근경색, 협심증, 뇌졸중, 뇌동맥류, 지주막하 출혈 등 심혈관 질환 사망률이 1.72%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13년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단일 질환 사망 원인 가운데 심장질환이 3위였고, 이 가운데 급성 심근경색에 의한 사망률은 가장 높았다.
급성 심근경색은 심장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는 3개의 심장혈관(관상동맥) 가운데 1개 이상 막혀 심장 전체나 일부분에 산소와 영양 공급이 중단되면서 심장 근육 조직이나 세포가 죽는 병이다. 심장 동맥이 막히면 20분 이내 심장 근육 내막이 죽기 시작해 2~4시간 후에는 모든 심장 근육이 괴사한다. 급성 심근경색은 발생 직후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30% 정도가 사망한다. 병원에서 적극적인 치료를 받더라도 사망률이 10%에 이르는 무서운 질환이다.
급성 심근경색의 전형적인 증상은 가슴 통증이다. 환자들은 주로 ‘가슴을 짓누른다’ ‘쥐어짜는 듯하다’ ‘칼로 도려내는 듯하다’ ‘빠개지는 것 같다’ 등으로 표현한다. 주로 가슴뼈 뒤, 양쪽 가슴, 명치와 복부 위쪽 등에서 심하게 죄는 듯한 느낌이나 바스러지는 듯한 통증이 나타나 어깨, 양쪽 팔 위쪽, 목, 어깨뼈 사이로 퍼진다. 통증은 짧게는 30분~3시간 동안, 길게는 1~3일 정도 지속된다.
따라서 급성 심근경색이 발생하면 환자 곁에 있던 사람은 즉시 119를 부르고, ‘골든 타임’인 4분 이내 심폐소생술(CPR) 등 응급처치를 해야 한다. 발병 후 적어도 4시간 이내 막힌 혈류를 뚫어야 한다.
물론 가슴통증이 나타난다고 해서 모두 심장질환 때문인 것은 아니다. 식도성 흉통, 신경성 흉통, 근육통, 늑막염, 기흉 등 다양하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명치 부위가 쓰리고 아프다면 대부분 위산이 식도 쪽으로 역류해 염증을 일으키는 역류성 식도염일 수 있다. 권현철 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평소 소화장애, 속쓰림이나 신트림이 있고, 몸을 앞으로 구부릴 때 누웠을 때 주로 아프다면 식도 쪽의 문제일 수 있다”고 했다.
늑골과 흉곽의 근육 이상으로 생기는 가슴통증(근육통)도 비교적 흔한 비(非)심장성 가슴통증이다. 협심증에 의한 가슴통증은 정확히 아픈 곳을 콕 찍기가 힘든 ‘전반적인 가슴통증’이지만 근육통은 특정 부위가 집중적으로 아프다. 특히 그 부위를 손으로 눌렀을 때 압통이 느끼거나 상체를 한 방향으로 움직일 때 심해진다면 단순 근육통일 수 있다.
환자 25%, 가슴통증 아닌 다른 증상
그러나 가슴통증이 나타나지 않으면서 급성 심근경색이 되는 경우도 25% 정도 된다. 급성 심근경색 환자 가운데 ‘뻐근하다’ ‘체한 것처럼 답답하다’ ‘고춧가루를 뿌린 것 같다’는 등의 전형적인 증상과 다른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다. 김경수 한양대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대개 목 부위가 답답하고 팔(특히 왼쪽 팔)이 아프거나 속이 더부룩하다는 이유로 이비인후과, 정형외과 등을 전전하다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이런 상황은 특히 나이가 많거나 당뇨병 환자일수록, 여성일수록 더 잦다”고 덧붙였다.
관상동맥이 예기치 않게 막히는 것은 죽상(粥狀) 동맥경화가 주 원인이다. 죽상 동맥경화는 혈관의 가장 안쪽을 덮고 있는 내막에 콜레스테롤 침착 등의 이유로 죽처럼 묽은 ‘죽종’이 생기는 증상이다. 동맥경화는 혈관 노화 외에도 고혈압, 이상지질혈증(고지혈증), 동물성 지방 위주의 식습관, 흡연 등에 의해 생긴다.
장기육 서울성모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심근경색으로 인한 돌연사 위험을 낮추려면 핏속에 콜레스테롤이 많아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규칙적인 운동을 하며 술ㆍ담배를 삼가야 한다”고 했다. 물론 비만, 고혈압, 당뇨병 등 혈관 노화와 동맥경화를 촉진하는 대사증후군도 피해야 한다.
물론 올바른 식습관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염분(나트륨) 섭취를 제한하고, 콜레스테롤과 포화지방, 트랜스지방 섭취를 줄여야 한다. 대신 식물섬유소를 충분히 섭취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식사하는 것이 권장된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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