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수도 베이징(北京)이 또 다시 잿빛 독성 스모그에 파묻히자, 주민과 네티즌 분노가 폭발했다. 격앙된 분위기에 긴장한 당국은 처음으로 스모그 적색 경보를 발령하는 등 여론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제멋대로 기준과 전형적인 전시 행정으로 주민들 불만은 오히려 더 커졌다. 스모그가 중국공산당의 권위까지 위협하고 있다.
8일 처음으로 스모그 적색 경보가 내려 진 베이징은 마치 유령 도시처럼 음산했다. 임시 휴교 권고 조치가 내려지며 거의 모든 초중고와 유치원은 문을 닫았다. 아이들이 뛰놀았던 학교 운동장과 놀이터엔 적막감이 감돌았다. 차량 강제 홀짝 운행제가 시행되며 평소 꽉 막히던 도로도 한산했다. 시민들은 가능한 외출을 줄였고 나가야 할 때는 꼭 방진 마스크를 썼다. 건설 현장 기중기도 모두 멈춰 섰다. 베이징시 인근 고속도로 10여 곳은 가시 거리가 40m까지 떨어지며 잠정 폐쇄됐다. 항공기 운항도 큰 차질을 빚으며 공항은 북새통이었다. 베이징의 초미세먼지(PM 2.5) 농도는 이날 내내 300㎍/㎥을 넘나 들었다. 이는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치(25㎍/㎥)의 12배에 달하는 수치다.
베이징시는 전날 밤 “8일 오전 7시부터 10일 정오까지 대기오염 최고 등급(1등급)인 적색 경보를 발령한다”고 공표했다. 이 조치는 최근 인터넷을 중심으로 당국의 안일한 스모그 대책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폭발한 뒤 나온 것이었다. 일주일 전 베이징엔 PM 2.5 농도가 1,000㎍/㎥에 육박할 정도의 살인 스모그가 엄습했다. 그럼에도 당시 베이징시는 대기 오염 2등급인 오렌지색 경보만 내렸다. 인터넷에서는 “도대체 스모그가 얼마나 더 심해야 대기 오염 1등급인 적색 경보를 발령할 것이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베이징시가 이번에 긴급히 적색 경보를 내린 것은 이러한 네티즌 분노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중국의 인터넷 인구는 6억명이 넘는다.
그러나 시민들은 당국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았다. 우선 경보의 기준에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회사원 장(張)모씨는 “일주일전 PM 2.5 농도가 1,000㎍/㎥일 때는 2등급(오렌지색) 경보였는데 오늘은 PM 2.5 농도가 300㎍/㎥ 정도인데 1등급(적색) 경보”라며 “평상시와 별 다를 게 없는데, 기준이 뭔지 모르겠다”고 의아해했다. ‘여우거타오쯔’란 아이디를 쓰는 네티즌은 “허난(河南)성 정저우(鄭州)시의 PM 2.5 수치는 400㎍/㎥인데 스모그 경보는 3등급인 황색 경보”라며 “수도와 지방이 왜 다른 것이냐”는 댓글을 올렸다. 실제로 이날 중국에선 싱타이(邢臺) 안양(安陽) 쉬창(許昌) 등 10여개 도시의 PM2.5 수치가 베이징보다 더 높았지만 이곳엔 1등급 경보가 내려지지 않았다.
지역별로 스모그 대응이 다른 데에 따른 혼선도 있었다. 허베이(河北)성 바오딩(保定)시와 랑팡(廊坊)시에선 대중 교통 이용을 장려하겠다며 버스 요금 면제를 시행했다. 그러나 베이징에서는 이러한 조치가 없었다. 버스 요금을 면제하란 목소리가 빗발칠 수 밖에 없었다.
인터넷에서는 평상 시 오염 수준에 적색 경보를 발령한 것은 당국의 전형적인 전시 행정이란 비판이 많았다. 일각에선 당국의 태도가 바뀐 것은 해외 순방중이었던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귀국했기 때문으로 해석했다. 웨이보(微博ㆍ중국판 트위터) 아이디 ‘융콰이러더위얼’은 “경보 발령보다 중요한 건 환경 오염을 근본적으로 막는 것”이라며 “언제까지 바람이 불어와 스모그가 날아가기만을 기다릴 것이냐”고 질타했다. ‘궈고비제이’는 “중국인은 이제 얼어 죽는 일은 없겠지만 스모그론 죽을 수도 있다”고 한탄했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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