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민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이 학예연구사 부당 채용 파문으로 직위해제된 후 바르토메우 마리 신임 관장이 선임되기까지 1년2개월은 국립현대미술관과 한국 미술계의 문제가 그대로 드러난 시기였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끝에 14일 업무를 시작하는 마리 신임 관장이 풀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파벌 싸움, 전시 세분화ㆍ전문화로 극복해야
2015년 6월 문체부의 현대미술관장 재공모 결정은 그간 설로 떠돌던 학계 파벌 싸움을 수면 위로 밀어올렸다. 최종 후보에 올랐지만 문체부 결정으로 탈락한 최효준 전 경기도미술관장이 노골적으로 ‘괄목홍대’를 언급하며 홍대 인맥이 미술계 인사를 좌지우지한다고 주장했다. 미술계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최종 후보였던 서울대 출신의 최 전 관장과 홍익대 출신의 윤진섭 미술평론가 두 사람을 겨냥한 투서가 난무했다”고 말했다. 결국 현대미술관장 자리가 외국인에게 돌아간 것도 이 같은 계파 싸움에 질린 김종덕 장관의 의지라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한국을 이따금 방문한 게 전부인 마리 관장이 한국 미술계의 뿌리깊은 계파 알력을 해소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다만 어느 정도 ‘교통 정리’는 가능하다.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을 지냈던 정준모 미술평론가는 “마리 관장이 전문성이 강화된 선진국형 미술관 체제를 도입한다면 미술계의 오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유럽에는 근대 현대 장래의 미술, 청년 작가들을 소개할 미술관이 각각 구분돼 있고, 건축 공예 사진 등 분야별 미술관도 따로 운영된다”며 “국립현대미술관을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궁극적으로는 분야별 전문 미술관이 따로 있는 것이 이상적이나, 당장은 현대미술관이 전시를 전문화ㆍ세분화하고 전문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이 치중하고 있는 거대 설치미술 외에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하던 작가들에게 전시 기회가 돌아가고, 전시 지분을 둘러싼 다툼이 해결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국미술계는 1970년대 단색화와 1980년대 민중미술을 제외하고는 근대 작품이나, 다양한 사조의 작가들이 전시 기회가 없어 국립현대미술관에만 목을 매는 형편이다.
검열 논쟁, 독립성 확보로 돌파해야
마리 관장은 올해 3월 바르셀로나현대미술관장 재직 당시 작가와 큐레이터에게 국왕을 풍자한 작품을 철거하라고 요구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에 휩싸였다. 관장 선임 전인 11월 미술인 800여명이 ‘국선즈(국립현대미술관장 선임에 즈음한 우리의 입장)’라는 이름으로 성명을 내고 해명을 요구했다. 미술인들의 검열 우려와 반발은 마리 관장 개인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예술계 전반에 걸친 문체부의 검열 의도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특히 관장 공석 중 국립현대미술관의 내부 규약이 변경돼 인사 선발과 작품 구입에서 관장의 권한을 축소시키고 문체부와 협의하도록 한 것이 문제가 됐다. ‘국선즈’에 참여한 미술인들은 3일 2차 성명서를 내고 “미술관은 자유로운 가치를 표명할 수 있는 장소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명서에 참여한 박찬경 작가는 “신임 관장이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서라도 문체부가 가져간 권한을 돌려주는 것이 맞다”며 “관장이 문체부 통제에 맞서 자신의 독립성을 지켜나가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문체부가 국립현대미술관의 법인화를 추진해 온 명분은 ‘국립현대미술관의 독립성과 전문성 확보’였다. 마리 관장이 미술인들의 우려대로 ‘정부의 코드에 맞는’ 전시만을 선보인다면 법인화의 명분도 사라지는 셈이 된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미술계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는 마리 관장의 적극적인 의지 표명이 절실하다.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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