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 배려하고 성의껏 응답한 결과
폭력적 민중 시위 평화적으로 매듭
봉쇄된 갈등엔 소통 싹트지 못한다
견해 주장 이해관계가 칡과 등나무처럼 얽혀 서로 적대시하거나 불화를 일으키는 상태를 갈등(葛藤)이라 한다. 지난 주말(5일)과 그 3주 전인 지난달 14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민중총궐기대회 현장에 있었다. 딱히 동참해야 할 이유도, 자리를 피해야 할 이유도 없었지만 오랜 시간 현장을 지켜보게 되었다. 지난달 1차 대회가 갈등의 모습이었다면 지난주 2차 대회는 소통의 장이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질서유지를 책임진 서울지방경찰청이 바뀌었을 리는 없다. 주최측도 명칭만 일부 변형되었을 뿐 거의 변함이 없다. 동일한 구성원이 주최하고 동일한 공권력이 질서유지에 나섰는데 불과 3주일 전에 있었던 ‘폭력시위-과잉진압’의 모습은 자취를 감췄다. ‘평화집회의 시작, 새로운 시위문화의 출발’이라는 공감이 확산됐다.
1차 대회는 갈등의 폭발이었다. 모이고 쌓였던 불만과 분노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시청앞광장의 노동법 개혁과 교과서 국정화 반대, 숭례문 북쪽에서 있었던 농민들의 쌀시장 개방 규탄,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빈민들의 생존권 투쟁 등이 ‘반(反)박근혜’ 상승작용을 일으켰다. 청와대로 몰려가느니 못 가느니 하다가 ‘폭력시위-과잉진압’으로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한 농민이 치명상을 입었다. 경찰은 ‘폭력시위’를, 대회 주최측은 ‘과잉진압’을 원인으로 내세웠다. ‘닭과 달걀’의 말싸움으로 얽힌 갈등이 가파르게 고조돼 갔다.
대응은 거의 동시에 나왔다. 경찰이 집회 자체를 금지하고, 검찰은 폭력시위자에 대해 구형량을 높이겠다고 뒷받침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복면 폭력시위는 거의 IS와 같다’는 식의 선언을 했고, 새누리당은 복면금지법과 테러방지법을 꺼내 들었다. 대회 주최측은 ‘5일-2차’를 예고하며 “시위를 계속 하겠다. 더 강력하게 투쟁하겠다”고 다짐했다. 서로의 일방적 결의로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타협과 소통의 물꼬가 트인 것은 그 직후였다. 조계종을 중심으로 종교계의 완충역할이 있었다. 사법부의 ‘중재노력’도 공개됐다. 서울행정법원은 이례적으로 신속(시의적절)하게 ‘폭력이 우려된다고 시위를 막아선 안 된다’고 결정했다. 제3자의 중재안인 셈이다. 대회 주최측과 질서유지 당국은 이를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 갈등이 타협의 실마리를 찾았고, 결국 직ㆍ간접적인 소통의 결과로 이어졌다. 2차 대회는 양측 모두에게 성공적으로 매듭지어졌다.
갈등을 풀 수 있는 쾌도난마(快刀亂麻)는 소통이다. 상대의 생각을 듣고, 자신의 입장을 얘기하고, 다시 듣고 새로 얘기하고, 서로를 향해 응답하는 과정이 소통이다. 1차ㆍ2차 민중총궐기대회를 보면서 갈등과 소통의 의미를 함께 떠올리게 된 이유다. 다수결 선거결과에 따라 주도권을 위임 받게 되는 민주사회에서 갈등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갈등을 해소할 책임은 주도권을 쥐게 된 세력에게 있다. 그 수단은 깃발을 따르라는 선도가 아니라, 듣고 응답하는 소통이어야 한다.
역설적으로 1ㆍ2차 민중총궐기대회는 박근혜 정부 들어 가장 소통이 잘 된 사건으로 보인다. 그 다음으로는 노동문제 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 정도가 있겠다. 그 합의는 비록 여전히 갈등의 불씨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소통의 단계로 고비를 넘어섰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 사안들이 그렇지 못하다. 최근에 발표된 사법고시 유예, 앞서 선포된 역사교과서 국정화 등에는 아예 갈등 자체가 원천적으로 봉쇄돼버렸다. 일방적으로 결정되어 선언된 조치 이후엔 얘기하고 듣고 설명하고 응답하는 소통의 과정이 무의미할 수밖에 없다. 불만과 대결만 남게 된다.
민중총궐기대회는 주최측의 주장에 따르면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앞으로 예정된 대회에 다시 ‘폭력시위-과잉진압’이 반복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번 소통의 묘미를 체험한 다음에는 다시 갈등의 장으로 되돌아가기가 쉽지 않다. 갈등이 허용되는 사회, 그 갈등이 소통의 일부로 자리잡는 사회가 상식으로 체득하는 민주주의의 모습이다.
/정병진 논설고문 bj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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