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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대륙을 울린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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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대륙을 울린 동영상

입력
2015.12.11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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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가방을 멘 9살 까까머리 남자 아이가 시각 장애인 아빠의 손을 잡고 한 노천 분식점에 자리를 잡는다. 아이는 주인 아저씨에게 쇠고기 국수 두 그릇을 시키고 값을 치른 뒤 귓속말로 무언가를 특별 주문한다. 잠시 후 식탁에 올라온 국수 두 그릇 중 아빠 몫엔 쇠고기 편육 고명이 가득 올려진 반면 아이의 국수엔 고기가 한 조각도 없다.

앞이 안 보이는 아빠는 “많이 먹고 공부 열심히 해서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 돼야 해”라며 자신의 국수 위 고기를 젓가락으로 집어 아이의 그릇에 옮긴다. 아이는 그러나 이 고기를 아빠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다시 아빠의 국수 위에 되돌려 놓는다.

이 광경을 보게 된 분식점 주인 아줌마는 쇠고기 편육만 따로 담은 접시를 내 놓는다. 아이가 “고기를 더 시킨 적이 없는데요?”라고 묻자 아줌마는 “그냥 주는 거야”라며 미소 짓는다. 아이는 감사하다고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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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친 아이는 먹고 남은 쇠고기 편육을 정성껏 비닐 봉지에 담은 뒤 아빠의 손을 잡고 탁자에서 일어선다. 빈 그릇을 치우러 간 아줌마는 순간 깜짝 놀란다. 식탁 모서리엔 쇠고기 편육 값인 듯한 지폐와 동전이 얌전히 놓여져 있었다.

최근 중국인의 눈물샘을 자극한 4분짜리 동영상의 내용이다. 이 작품은 노천 분식집 주인이 인터넷에 올린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각 장애인 아빠를 돌보는 아이의 효심은 심청전을 보는 듯 하다. 아이를 아끼는 아빠의 마음도 우리네 부모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이가 식탁에 돈을 놓고 간 장면이었다. 아이는 스스로 자존심을 지키려 한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아이가 원한 건 동정이나 도움이 아니라 존중과 똑같은 대우였을지 모른다. 다른 사람을 도울 때는 받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도 새삼 깨닫게 해 준다. 주는 사람의 동정심은 훌륭한 것이지만 받는 사람의 자존심이 지켜질 때 그 가치는 더 빛난다.

사람과 사람뿐 아니라 사회와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터키에서 열린 주요 20개국 회의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국제 사회와 함께 매년 630억달러의 수요가 예상되는 동북아 지역의 인프라 투자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같은 민족인 북한을 돕겠다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헌법에 핵 보유를 명시했다. 배수의 진을 친 북한에게 핵을 포기하면 지원하겠다는 것은 사실 돕지 않겠다는 얘기나 다름 없다. 우리가 아무 조건 없이 도와주겠다고 해도 북한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받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하물며 조건이 달린 지원이라면 북한으로서는 받아들일 수가 없다. 박 대통령의 구상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핵 개방 3000 구상’과 기본적으로 다를 게 없다. 이러한 방식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후 남북 관계 경색이 잘 보여준다. 이처럼 북한이 방치되는 사이 북의 핵 능력은 더 커졌고 수소폭탄 엄포까지 나왔다.

박 대통령의 대북 지원 구상 발표 1주일 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은 양안(兩岸) 정상회담을 갖고 중화 민족의 부흥을 한 목소리로 외쳤다. 66년 만에 처음으로 회담이 성사된 건 국내총생산(GDP) 기준 21배가 넘는 국력 차이에도 시 주석과 마 총통이 서로를 ‘선생’이라고 부르며 상대방을 동등하게 존중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남북의 정상도 ‘여사’든 ‘선생’이든 일단 서로를 인정해야 화해와 협력이 가능하다. 북한은 한국 경제의 마지막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실 더 아쉬운 건 이제 우리일 수도 있다. 11일 남북 당국 회담이 열렸다. 남북이 국수 한 그릇의 고명도 서로 양보하며 한민족의 정을 나눌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박일근 베이징특파원 ikpark@hankookilbo.com

박일근 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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