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국정 한국사 교과서 집필진 명단을 확정한 정부가 이들이 소속된 일선 학교에 집필진 선정 여부를 통보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편찬작업이 본격화되면 집필자가 소속된 학교에 업무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도 어떤 통보도 하지 않아 학사 운영의 혼란을 방치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동료 교원들에게 8일 단체 메시지를 보내 자신이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진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밝힌 김모(36) 교사가 재직 중인 서울 대경상업고의 조춘국 교장은 11일 본보와 만나“학교 소속 교사가 집필진으로 선정됐다는 사실을 해당 교사 본인이 단체 메시지를 발송하기 전까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조 교장은 “(김 교사가 집필진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알린 8일부터) 자진 사퇴하겠다고 한 10일 오후 늦게까지 교육부에서는 어떤 협조 공문이나 지침을 받은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조 교장은 “(김 교사가 사퇴 의사를 밝히기 전) 내년도 학사 일정을 짜야 하는데, 김 교사를 파견 형태로 처리해야 하는지, 임시 출장 형태로 처리해야 하는지, 휴직을 시켜야 하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않았다.
조 교장에 따르면 김 교사가 동료 교원들에게 단체 발송한 A4 용지 3장 분량의 메시지는 교직보다는 연구 분야에 천착하고 싶다는 개인적 포부를 담고 있는 등 학교를 떠나는 듯한 고별문의 형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이 학교 관계자는 “김 교사가 메시지를 보내면서 자신이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고종사촌동생이라는 얘기를 하는 등 우쭐해 자랑하고 싶어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박덕호 국사편찬위원회 역사교과서편수실장은 “현장교사를 포함해 집필진이 소속된 기관에 당사자의 집필참여 사실 및 관련 협조요청을 한 바 없다”며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교사들은 개인 자격으로 외부기관 공모에 지원했으니 공무원들과 마찬가지로 필요하면 그때 그 때 연가를 활용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철호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국편의 밀실집필 방침이 결국 집필진이 속한 학교 운영에 혼란을 가져온 셈”이라며 “현 기조를 유지한다면 다른 학교들도 비슷한 상황을 겪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현수기자 ddackue@hankookilbo.com 김민정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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