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안에서 변화와 혁신은 불가능하다”며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안철수 전 대표의 진단에 100% 동감이다. 그러나 당 밖에서도 그가 새로운 정치세력이 되는 것은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사실상 대중은 지금 새정치연합의 문-안 연대가 깨지든 말든 개의치 않는다. 아마 새누리당의 차기가 누가 되든 그 역시 괘념치 않을 것이다. 차라리 보수와 진보, 좌와 우가 대립하는 정당 구도, 그 공고한 진영구도를 밑바닥부터 흔들어 깨뜨려 버리는 것이 어떤가. 유승민 의원, 남경필 경기도지사, 안희정 충남도지사 같은 이들이 연합하여 신당을 만들기를 제안한다.
물론 이들은 지금 각각 다른 당에 속해 있다. 이념적 지향에 제법 편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하나로 묶는 핵심은 논리적으로 말이 통하는 이들이라는 점, 그래서 정책으로 승부할 줄 아는 정당을 결성할 만하다는 점이다. 이 신당의 출현은 토론이 가능한 집단과 불통의 집단이라는 전혀 새로운 프레임의 구도를 제시할 것이다. 진보-보수 진영의 대립이 아닌, 합리-비합리 진영으로의 재편이다. 이 얼마나 매혹적인 프레임인가.한국 사회에 대한 냉소가 극에 달한 지금 나라면 이런 정당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안타깝지만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와 안철수 의원은 지금의 정치현실을 타개할 대안이 될 수 없음이 명백하다. 명석하고 청렴하나 안 의원은 어떤 국면에서도 비전을 제시한 적조차 없이 몸을 사렸고, 문 대표는 번번이 친노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이런 식으로는 전당대회를 10번을 하든, 누가 탈당을 하든 달라질 게 없다.애석하지만 두 분 다 이대로 물러나셔도 좋다. 물론 40% 콘트리트 지지율을 보유한 새누리당 의원이 무엇 하러 신당의 모험을 하겠느냐는 게 현실적인 장애가 되겠지만, 특정 지역에 기반한 새누리당이 과연 미래지향적 세대교체가 가능할 것인지, 이런 식으로 정당의 생명이 얼마나 갈 것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서“배신”이라는 노여움을 받고 원내대표에서 물러났지만 여야 합의와 법적 절차를 지키려 했던 유승민 의원, 지자체 사상 처음으로 야당과 연정을 실행한 남경필 지사, 그 자신도 반대했으나 가뭄 해소를 위해 4대강 사업을 활용하자고 주장한 안희정 지사 등이 하나의 당으로 뭉친다면 우리 정치지형에 어떤 변화가 올까. 일부 역사교과서의 내용에 불만이 있지만 그렇다고 교과서를 국정화하는 건 민주주의의 퇴보임을 부끄럽게 자각하는 지각 있는 중도층이 이들을 지지할 것이다. 정부가 밀어붙이는 노동개혁에 불안을 느끼지만 대안적 정책을 내놓지 못하는 야당이나 노동계에도 역시 실망하고 있는 비판세력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잇속만 차리는 정치인들에 신물이 날대로 난 정치 외면층까지 돌아오게 할지도 모른다. 국민들에게 우리 정치도 변할 수 있다는 꿈을 품게 해주는 것, 사실상 안철수 돌풍의 본질이었던 바로 그 변화의 꿈을 불러일으킨다는 건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가. 비합리와 극단을 배제한 이 신당은 최소한 캐스팅보트가 될 게 확실하고, 어쩌면‘미래의 정치’라는 돌풍을 일으킬 것이다.
오직 나만이 진정한 혁신세력이라며, 친박 중에서도 가짜 아닌 진짜 친박이라며, 분열하고 탈당하는 것을 지켜보는 데에 지쳤다. 지금의 정당 특히 야당은 권력을 잡겠다는 욕심에 결과적으로 스스로 지지기반을 무너뜨려 왔다. 대안 없는 그들의 독선에 지쳤다. 복지를 확대한다면 세금을 올려야 한다고 설득할 줄 아는 정치인을 고대한다. 국가적 부패와 부실로 무고한 생명이 희생됐을 때 진심으로 사과하고 시스템 개선을 고민하는 정치인이 보고 싶다. 민주적 절차를 준수하며, 토론에 의해 민의를 수렴하고, 앞뒤가 맞는 정책방향을 제시하는, 상식적인 정당이 나올 때가 됐다. 이런 정당이라면 갈수록 넓은 지지자들을 포괄하는 통합의 정치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니 이제 나서달라. 유승민부터 안희정까지.
김희원 문화부장 h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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