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선 직전 文ㆍ安 구태 판박이에 신물
안철수 의원이 13일 새정치민주연합을 끝내 탈당하면서 2012년 야권 대선후보 단일화 당시의 구태가 반복되고 있다. 정치적 승부수로 포장된 안 의원의 선택은 또다시 철수(撤收)정치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며 빛이 바랬고, 야권은 총선을 불과 4개월 앞두고 전례 없는 분란에 빠져 허우적대는 모습이다.
문안, 2012년 대선 앙금에 발목 잡혀 또다시 파국
안 의원의 탈당은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와 야권 대선후보 자리를 두고 치고 받던 단일화 과정의 복사판이다. 대선을 한달 앞둔 2012년 11월 안 의원은 단일후보 선정을 위한 여론조사 방식을 놓고 문 후보 측과 협상을 벌이던 와중에 돌연 기자회견을 자청, 후보 사퇴의 변을 밝혔다. 혁신전당대회를 주창하면서 문재인 대표를 압박하다가 여의치 않자 탈당이라는 초강수를 던진 이번 상황과 유사하다.
안 의원은 당시 백의종군을 선언하며 “단일후보는 문재인”이라고 양보하면서도 “이로 인해 새 정치의 꿈은 잠시 미뤄졌다”고 자신의 정당성을 강변했다. 후보 단일화 약속→합의 실패→후보직 사퇴→새 정치 실현이라는 논리였다. 이후 안 의원은 후보 사퇴 2주가 지나서야 문 후보 지원유세에 나섰지만 결과적으로 아름다운 단일화라는 대국민약속이 깨지면서 지지층을 결집하지 못한 채 대선에서 패배하는 빌미가 됐다. 안 의원이 지난 5월 혁신위에 참여해달라는 문 대표의 제안을 단번에 거절한 것을 두고 2012년의 악연을 떠올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물론 문 대표가 사실상 안 의원을 당에서 내쫓은 측면도 적지 않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문 대표는 혁신안을 통과시키고 재신임을 거치면서 안 의원의 개혁 이미지에 생채기를 입혀 주홍글씨를 씌워왔다”며 “폭력남편 때문에 못 살겠다고 집 나간 부인을 바람났다고 몰아붙이는 격”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장, 대선후보 경선서 번번이 철수한 안철수
안 의원이 새정치라는 명분을 내세우긴 했지만 탈당이라는 초강수를 두면서 그의 ‘철수(撤收)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는 더욱 굳어졌다.
안 의원은 수년에 불과한 짧은 정치이력에 4차례나 방향을 트는 갈지자 행보를 보였다. 시작은 2011년 10월 서울시장 선거였다. 당시 안 의원은 대중적 인기를 몰아 출마를 저울질하다 박원순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게 후보직을 양보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안 의원의 당시 선택은 도리어 전화위복이 됐다. 양보할 줄 아는 참신한 이미지가 덧씌워지면서 일약 대선후보 반열에 오른 것이다. 안 의원은 기세를 몰아 2012년 9월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하지만 11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도중 전격 사퇴하면서 또다시 꿈을 접었다.
대선 직후 미국 칩거에서 돌아온 안 의원은 2013년 4월 노원병 재보선에서 당선돼 정치권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어 같은 해 11월 국민과 함께하는 새정치 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켜 이듬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신당 창당 움직임이 본격화됐고 안 의원은 일약 정치권의 핵으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안 의원의 선택은 기성 정당과의 합당이었다. 2014년 3월 민주당과 손을 잡은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했다. 이후 안 의원은 트레이드 마크인 새 정치라는 수식어를 대중에게 어필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자신이 공동대표를 지낸 정당에 비수를 꽂고 돌아서면서 물거품이 됐다. 이준한 인천대 정외과 교수는 “안 의원은 자신이 표방한 새 정치가 도대체 무엇인지 국민에게 설득력 있게 보여주지 못했다”며 “정치에 발을 들여서는 안될 사람이 길을 잘못 들어섰고 자연히 도태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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