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엑셀파일이 궁금했다. 제주의 제철 식재료와 그에 맞는 음식을 연구하면서 구축한 그만의 캘린더다.
제주에 대한 호감과 함께 제주의 음식에 대한 관심도 급상승했다. 너도 나도 올리는 제주 맛집 이야기는 너무 많아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제주 맛집 정보는 차고 넘치는데 제주 맛에 대한 궁금증은 쉬 풀리지 않았다. 제주 해비치호텔의 이재천(46) 총주방장을 찾은 건 그 이유 때문이다.
그는 제주 출신이 아니다. 20대 초반 3년여 프랑스 유명 요리학교인 르 꼬르동 블루에서 수학한 그는 1994년부터 줄곧 서울 소공동의 웨스턴조선호텔에서 근무하며 국내외 유명 요리대회에서 다수의 입상 경력을 쌓아왔다. 2010년 새로운 도전에 이끌려 제주에 내려왔고 부지런히 발품을 팔며 제주의 맛을 탐구해오고 있다.
그는 “제주에 와보니 서울에선 볼 수 없는 식재료가 너무 많았다”고 했다. “서울에선 제철이란 게 의미 없었다. 유통업자가 가져다 주는 재료들을 가지고 쓰면 됐다. 제주에서 잘 몰랐던 어패류 등 식재료를 접할 수 있었고 그들이 사는 환경이나 유통과정 등을 배울 수 있었다.”
그는 그렇게 배운 제주의 식재료들로 끊임없이 새로운 메뉴를 실험해왔다고 했다. “음식이란 게 교류가 있어야 많이 발전하는데 제주는 오래 고립돼 있어 기술적인 부분에선 조금 뒤처져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발전할 부분이 더 많지 않겠는가. 가능성이 큰 이유다.”
높은 산과 너른 밭, 깊은 바다에서 쏟아지는 제주의 식재료는 매우 다양하다. 한겨울의 식재료로는 부드러운 해초나 방어 귤 등을 활용할 수 있고, 이후 4월엔 자리, 5월엔 고사리, 여름엔 한치와 양하 등이 철이라고 했다. “철마다 다른 생선과 해조류, 나물과 채소 등이 아주 풍족하진 않지만 레스토랑 운영에 불편함이 없이 나온다”고 했다.
그는 업무가 끝나면 제주가 고향인 직장 동료들과 함께 제주 맛 탐방에 나섰고, 새벽이면 항구에 나가 어부들로부터 각종 제주 생선들의 특성들을 전해 들었다.
그는 최근 TV 맛집 프로그램 때문에 제주의 보존해야 할 식당들이 망가지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서귀포에 있던 한 식당은 그 방송 이후 일대가 정체를 빚을 정도로 사람들이 몰렸다. 여러 메뉴를 내놓던 식당이었는데 사람들이 몰리니 한 가지만 팔게 되더라. 또 다른 물회식당의 경우 전형적인 제주식 된장 물회였는데 유명해진 다음엔 육지식 맵고 자극적인 물회로 바뀌었다.”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산의 정상은 하나지만 그곳에 오르는 등반 방식은 여러 가지다. 요리의 정상에 올라갔다면 다른 방식으로 오른 이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프렌치, 일식, 한식이 됐든 정점에 올라섰다면 다른 분야로 정상에 오른 이와 대등한 맛을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 음식의 정상으로 향하는 길, 그가 선택한 코스는 제주의 음식이었다.
제주=이성원기자 sung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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