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화 국회의장은 16일 청와대와 여당의 쟁점법안 직권상정 압박 속에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는 입법부 수장의 면모를 보였다.
정 의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국가 비상사태에 (직권상정이) 가능하다고 돼 있는데 과연 지금 경제 상황을 그렇게 볼 수 있느냐 하는 데 대해 나는 동의할 수 없다”며 국회법 85조를 직접 언급하며 청와대와 여당의 요구를 정면 거부했다. 정 의장은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하기 위해 이례적으로 기자간담회의 TV생중계까지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의장은 친정인 여당을 향한 쓴소리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먼저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이 전날 “선거구 획정만 직권상정하는 것은 국회의원들의 제 밥그릇 챙기기”라고 말한 데 대해 작심한 듯 “내년 총선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는 입법 비상사태가 생길 수도 있는데 밥그릇을 챙긴다는 표현은 아주 저속하고 합당하지 않다”면서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청와대와 새누리당 지도부가 최근 경제상황을 ‘국가비상사태’로 규정하며 경제법안의 직권상정을 요구하는 데 대해서는 국회법까지 들어 보이면서 반박했다. 그는 선거제도와 경제법을 연계처리하면 비판이 있을 수 있다는 질문에 대해서는 “여야 대표가 요구하는 상황이고 제가 그렇게 하라는 게 아니다. 중재자인 제가 ‘안 된다’, ‘된다’ 하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반박했다.
정 의장은 여야 합의를 거듭 강조하면서 의회주의자의 면모를 잃지 않으려 애썼다. 그는 “야당이 제시한 선거권자 연령을 18세로 낮추는 문제를 여당이 검토하고 야당이 6가지 쟁점법안을 일괄 처리할 수 있도록 대화를 하다 보면 타협이 이뤄질 수 있지 않겠느냐”며 “여야가 지혜를 모아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좀 해달라”고 여야에 합의를 주문했다. 그는 그러면서 “어느 정도 시점이 되면 여야 지도부를 다시 한 번 만나 마지막 중재 노력을 해볼 생각이 있다”고 밝혔다.
정승임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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