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급격히 내려간 기온처럼 재계에도 구조조정 한파가 불고 있다. 특히 매년 되풀이되던 임원급 감원 바람이 올해는 과장과 차장 등 중간직급은 물론 대리 및 신입사원으로 대상이 확대되는 모습이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신입사원이나 20~30대 초반 직원들까지 희생양이 되면서 안팎의 위기감이 조성되고 있다.
▲ 연합뉴스
■ 위기의 조선·중공업…입사 1년차도 가차없어
대규모 감원 바람의 시작은 조선과 중공업이었다.
건설기계 시장 축소 등의 여파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 8일부터 오는 18일까지 국내 사무직 3,000여명 전원을 대상으로 명예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4번째로 시행하는 이번 희망퇴직은 연령 제한이 없어 지난해 입사한 공채 신입사원과 23세 여직원까지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급속히 확산됐다. 말로는 희망퇴직이지만 지난해 두산그룹 공채로 입사해 두산인프라코어로 발령받은 지 1년여만에 퇴사한다는 것은 사실상 해고 수순에 가깝다는 것. 두산인프라코어 측은 사업 정상화를 위해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히며 무마하려 했지만 박용만 두산회장조차 "신입사원에 대한 보호조치를 계열사에 지시했다"고 말해 다시금 논란을 부추겼다.
'사람이 미래다'라는 그룹 광고카피와는 달리 두산인프라코어는 올해 들어 네 차례나 퇴직프로그램을 실시하는 이율배반적인 행태를 보였기 때문이다. 박용만 회장은 16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의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조찬간담회에서 "절박한 위기감은 이해하나 신입사원까지 희망퇴직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최근 사우협의회의 제안으로 무급순환휴직 제도가 도입되면서 강력한 구조조정이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무급순환휴직은 전 임직원이 회사의 고통을 분담하자는 차원에 휴직없이 1개월 치 급여를 반납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연말까지 700명 이상의 인력을 줄일 것으로 알려지면서 내부에서는 무차별 구조조정이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조선업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대우조선은 1조8,500억원 규모의 자구계획을 이행하며 지난 8월 이후 본사 임원을 55명에서 42명으로 30% 줄이고 희망퇴직과 권고사직 등을 통해 부장급 이상 고위 직급자 300명을 감축했다.
현대중공업그룹도 현대미포조전과 현대삼호중공업 등 전 계열사의 급여 반납과 인건비 축소 등을 통해 약 5,000억원 이상을 절감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중공업의 경우 이미 지난 9월 인사에서 임원 10여명이 퇴사했으며 상시 희망퇴직을 통한 인원 감축이 진행중이다.
STX조선해양도 구조조정 대상자를 넓혀 20대 직원을 포함한 모든 직원으로부터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 제조업·금융권도 명퇴 칼바람 못 피해
전자와 자동차 등 제조업 분야에서도 구조조정이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달 초 단행된 임원인사에서 20%가 넘는 인원 감축이 있었다. 특히 최근 1년새 전자계열사의 경우 실적 부진의 영향으로 1,000여명이 회사를 떠나게 됐다.
한국GM도 내년 1월 4일부터 13일까지 사무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시행한다. 동국제강도 명예퇴직을 통해 20여명의 인력을 정리했다.
해운업계 역시 자율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20일 전후로 발표될 대기업신용위험평가 결과를 통해 구조조정이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은 전체 임직원의 18%인 961명을 감축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SC은행은 지난달 23∼27일 닷새간 만 40세 이상, 10년 이상 근속한 직원을 대상으로 특별퇴직을 신청을 받았다. 이번 특별퇴직은 2018년까지 직원 1만5,000명을 감축하기로 한 SC그룹의 글로벌 구조조정 계획에 따른 것이다.
올해 5월 1,121명에 달하는 대규모 희망퇴직을 단행한 KB국민은행은 이르면 연말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는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진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지난해의 2배 이상인 310명의 직원이 올해 초 희망퇴직을 신청한 신한은행은 내년 초에도 연례적인 희망퇴직 신청을 받을 예정이다. 우리은행 역시 지난달 평균 19개월치의 월급과 3개월치 연수비용 등을 지급하는 퇴직 지원 프로그램인 '전직지원제도' 신청을 받았다.
보험·카드업계에서도 구조조정 움직임과 이와 관련한 소문이 올해 내내 끊이지 않고 있다.
현대라이프생명보험은 지난 7월 조직 효율화를 위해 5년차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신청받았다. 3월에는 메리츠화재가 희망퇴직을 시행해 400여 명의 직원이 신청했다. KB손해보험은 저성과자 직원 20여명을 상대로 역량강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던 중 직원 2명이 퇴직하면서 논란에 시달린 바 있다.
삼성생명은 희망자에 한해 최장 3년까지 휴직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해 50여명의 신청을 받았으며, 삼성카드는 휴직·전직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희망자 신청을 받았다.
■ 식품·패션도 구조조정 한파…불황의 늪 깊어
패션업계도 구조조정을 피해가기 어려울 전망이다. 특히 국내 SPA 시장에서는 유니클로를 비롯해 H&M, 자라 등 해외업체들이 자리잡으면서 토종 브랜드들의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업체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구조조정이 본격화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SPA브랜드 '탑텐'을 운영하는 신성통상은 내년 생산량 감축에 이어 조직 슬림화 등 강도 높은 몸집 줄이기를 통해 내수와 수출 부문을 포함해 최대 20% 까지 인력을 줄일 것으로 알려졌다. 토종 SPA브랜드 '코데즈컴바인'도 최근 코튼클럽이 인수하면서 시스템 및 인력 조정을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물산의 패션 브랜드 '에잇세컨즈'도 2013년까지 1,300억원대의 연매출로 급성장했으나 지난해 1,500억원에 그치며 정체되는 모습이다.
한국피자헛은 글로벌 피자헛의 경영 전략에 따라 올 들어 75개 직영매장 중 61개를 가맹점으로 전환하고 연내 남은 14개 매장도 가맹점으로 바꿀 예정이다. 때문에 지난 9월에는 매장 직원 3,250명이 퇴사했고 이달까지 530여명이 추가로 그만둘 예정이다.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고비용의 고참 부장급 등을 중심으로 희망퇴직이 실시됐지만 최근에는 30대 전후의 대리, 과장급으로까지 퇴직을 권고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회사의 뼈대를 이룰 이들마저 내보낼 만큼 심각한 상황으로 여겨지지만 이를 지켜보는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로열티 역시 떨어지는 모습"이라고 전했다.
채성오기자 cs86@sporbiz.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