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과정 예산 마찰 소송전으로 번질 기미
어린이집 누리과정에 전용 의결에
인천·강원 교육청 '부동의' 입장
"재심사·무효소송 방침" 강력 반발
유치원 보육대란까지 비화 우려
누리과정(만 3~5세 무상교육) 어린이집 예산배정을 둘러싼 중앙정부와 시도교육청의 갈등이 시도의회와 일부 교육청 간 갈등으로 확대된 가운데 소송전으로까지 번질 양상이다. 상당수 지방의회가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을 줄여 당초 예산이 편성돼 있지 않았던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으로 돌리도록 의결했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던 일부 시도교육감들은 이에 반발해 재의 요구 또는 무효소송을 제기하겠다는 방침까지 밝혔다. 중앙정부의 국고 추가지원 등 특단의 조치가 없을 경우 누리과정 예산파동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유치원조차 몇 개월 뒤 보육대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방자치법 127조에 따르면 지방의회는 지방자치단체(교육청)장의 동의 없이 예산을 증액하거나 새로운 예산항목을 만들 수 없다. 지자체장이 동의하지 않았는데 지방의회가 예산을 편성하면 재의(의결된 안건에 대해 재심사) 요구 및 대법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16일 지방의회 본회의에서 내년도 예산안을 의결한 인천ㆍ광주ㆍ대전ㆍ세종ㆍ강원ㆍ충남ㆍ전남 등 7곳 지자체 중 5곳이 유치원 예산을 깎기로 했고, 향후 3곳(서울ㆍ경기ㆍ충북)의 지방의회도 유치원 예산을 삭감할 가능성이 높다. 이유는 정치적이었다. 교육감이 진보성향이지만 의회가 여대야소(인천ㆍ강원)인 경우 의회가 “지자체 예산으로 유치원은 물론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까지 감당할 수 있다”는 중앙정부 방침에 호응하는 차원에서 유치원 예산을 깎았고, 교육감이 진보성향이고 의회도 야당이 장악한 경우 누리과정 예산을 지자체에 전가하려는 중앙정부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유치원 예산을 깎았다. 인천ㆍ강원ㆍ충남 시도교육감들은 의회가 어린이집 예산을 편성해 예산안을 통과시키자‘부동의’입장을 밝혔다.
인천시교육청의 반발이 가장 거셌다. 인천시의회는 이날 본회의에서 유치원 누리과정 1년치 예산 1,156억원 중 일부(561억원)를 어린이집 예산 6개월치로 돌리고, 유치원 예산은 6개월치(595억 원)만 배정한 예산안을 가결했다. 이에 대해 이청연 시교육감은 “6개월 뒤 혼란으로 빠지는 일을 막아야 한다”며 “결국 정부는 작년처럼 빚을 내서 해결하라고 할 텐 데 이는 인천 교육의 미래를 저당 잡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교육감은 시의회에 의결사항에 대해 재의를 요구할 방침이다. 인천시 교육청 관계자는 “재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대법원 제소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강원도교육청 사정도 비슷했다. 애초 민병희 도교육감은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배정하지 않고 유치원 예산은 전액 편성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다수당인 도의회는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 227억 원 등 도예산 총 408억 원을 삭감해 이를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으로 편성했고 이날 이 안을 통과시켰다.
충남도의회는 어린이집 예산은 깎지 않았지만 교육청 정책사업 예산 328억 원을 삭감하고 이월금을 더해 애초 편성되지 않았던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6개월치(536억 원)를 편성했다. 김지철 도교육감은 의회에서“안타깝게도 드릴 말씀이 없다”며 부동의 방침을 밝혔다. 대전의 경우 당초 전액 편성된 유치원 예산 중 367억 원을 깎아 어린이집 예산으로 편성한 의회 안에 교육감이 동의하면서 유치원과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이 각각 6개월씩 편성됐다.
반면 교육감이 진보 성향이고 의회 역시 야당이 다수당인 광주, 전남은 애초 편성했던 유치원 관련 예산까지 전액 삭감했다. 누리과정 예산을 지자체에 떠넘긴 중앙정부에 대한 항의 차원이다. 서울시 의회도 같은 차원에서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을 모두 삭감할 가능성이 높다.
보육대란이 눈앞에 보이는 상황이지만 정부는 3,000억 원 이상의 국고지원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추경호 국무조정실장은 이날 시·도 교육청 누리과정 예산 점검 및 대책협의를 위한 관계부처 차관회의를 열고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선 시·도교육청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앙정부, 시도교육청, 시도의회의 타협점 없는 치킨게임에 보육대란에 대한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김현수기자 ddackue@hankookilbo.comㆍ전국종합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