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 이동근)는 17일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행적’의혹을 보도한 혐의(명예훼손)로 불구속 기소된 일본 산케이신문의 가토 다쓰야(加藤達也ㆍ49) 전 서울지국장에게 “비방목적이 없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따라 청와대의 하명에 따라 무리하게 기소해 외교적인 논란을 일으킨 검찰이 국제적인 망신을 자초했다는 비판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비슷한 내용의) 조선일보 칼럼 보다 더 나아가 증권가 관계자의 말도 인용했고, ‘남녀 관계’라고 했다”며 “소문을 사실인 것처럼 암시했다”고 밝혔다. 이어 “허위임을 미필적 고의로나마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사인(私人) 박근혜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업무 수행의 측면에서 대통령이 그때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지적은 소문 내용이 허위라 타당하진 않지만, 곧바로 공직자 박근혜의 명예 훼손이 성립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 세월호 관련 정치 상황이 민감한 시기였고, 이런 상황을 자국(일본) 국민에게 알려주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며 “박 대통령 개인비방 목적은 없었다”고 무죄이유를 밝혔다.
적용 법조항인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 2항은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에게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 범죄 구성요건 중 ‘비방할 목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앞선 공판에서 검찰 수사 내용을 토대로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정윤회씨를 만났다는 소문은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허위라는 것이 증명됐다”며 문제의 소문이 허위임을 분명히 했었다. 그리고 검찰은 “허위 소문임을 알면서도 전파성이 큰 인터넷에 보도해 박 대통령의 명예를 심각히 훼손했고, 비방 목적이 인정된다”며 징역 1년6월을 구형했다.
가토 전 지국장은 작년 8월 3일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 누구와 만났을까’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박 대통령이 정윤회씨와 함께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해 기소됐다.
이 칼럼은 조선일보 칼럼에서 다뤄진 대통령 관련 풍문에다가 증권가 정보지에 나온 의혹을 덧붙인 내용이었다. 검찰이 카토 전 지국장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하자, 국내외의 비판이 잇따랐다. 극우 성향 일본신문의 부실 보도였다고 해도 기자에 대한 형사처벌로까지 이어진 것은 언론자유 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보통 오보에 대한 대응은 정정보도 청구나 민사소송으로 해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본 정부는 당시 “매우 유감”이란 입장을 밝혀 외교 문제로도 비화됐다. 일본 언론은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비판했었고, 서구 언론도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했다. 진보성향의 일본 유력지인 아사히신문은 당시 “풍문을 안이하게 쓴 산케이신문의 보도 자세는 반성해야 한다”면서도 “당국이 기자를 출석시켜 조사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세계 선진국의 상식에서 보면 공권력에 의한 위압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었다.
손현성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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