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에도 지켜야 할 예의가 존재합니다. 이별을 차마 인정하지 못하고 전 연인을 찾아가거나 연락을 하는 일도 가급적 자제해야겠지만, 무엇보다 꼴불견인 것은 전 연인의 험담을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는 일일 겁니다. 애정이 애증으로 바뀐 마음은 이해하지만, 헤어졌다고 해서 한 때 사랑했던 사람을 욕하는 것은 상대방은 물론이고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이나 마찬가지라 가장 금기로 꼽힙니다.
그렇다면 결별 수순(?)을 밟은 안철수 의원과 새정치연합의 경우는 어떨까요. 안 의원의 탈당으로 충격에 빠진 새정치민주연합은 최근 ‘설화(舌禍)주의보’를 발령했다고 합니다. 어제의 동지에서 오늘의 적이 된 안 의원에 대한 비판이나 비난을 자제하라는 의미입니다. 여야(與野) 가릴 것 없이 ‘탈당은 곧 배신’이라며 탈당의원들에게 철새 정치인의 낙인을 찍고 조롱하던 기존 정가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라 눈길을 끕니다.
당 내 입단속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전병헌 최고위원입니다. 전 최고위원은 16일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안철수 의원의 탈당에 관해서 이야기 할 때 의원이든 당직자든 입조심을 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당부를 했다고 합니다. 전 최고위원은 이날 공개발언에서도 “안철수에 대한 어제의 동지로서 비난이나 조롱도 바람직스럽지 않을 것”이라 재차 강조했습니다. 당 내에서도 이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공개적인 자리이건 비공개적인 자리이건 안 의원에 대한 언급은 꺼리는 분위기가 팽배합니다.
새정치연합이 이처럼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는 이유는 말실수가 안 의원과의 관계를 돌이킬 수 없게 만드는 설화로 번질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특히 정치권은 말 한마디로 서로 철천지원수가 되거나 승승장구하던 정치인이 몰락하는 경우가 허다한 곳입니다. 비록 탈당으로 당과 안 의원은 공식적으로 완전 결별했지만, 추후 총선이나 대선에서 또 한 번의 ‘오월동주’가능성이 남아 있는 만큼 서로 간의 감정싸움은 자제하자는 겁니다.
또 이미 탈당을 선언한 문병호ㆍ황주홍ㆍ유성엽 의원을 비롯해 20일 추가 탈당한 김동철 의원까지 ‘릴레이 탈당’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당 내 분위기를 다독여 더 이상의 분열을 막자는 의미도 있습니다. 새정치연합의 한 당직자는 “이미 나간 사람은 그렇다 치더라도 괜히 남은 사람들끼리 말로 상처 줄 필요가 있나”며 “특히 추가 탈당자로 이름이 거론된 사람들에게 ‘안 나가고 뭐하냐’는 식으로 이야기해 괜히 분란을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실제로 안 의원의 탈당 후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는 안 의원이나 당 내 탈당파에 대한 언급을 거의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탈당 직후 “(새정치연합은)냄비 속 죽어가는 개구리가 되어가고 있다” “평생 야당만 하기로 작정한 정당” 등 당을 향해 작심발언을 쏟아내던 안 의원도 발언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고 합니다.
1년 9개월, 날짜로는 627일. 안 의원이 새정치연합을 창당 한 뒤 당과 함께 한 시간입니다. 이제 제 갈 길을 향해 헤어진 안 의원과 당이 부디 서로에게 최악의 ‘구 남친’ 혹은 ‘구 여친’으로 남지 않기를 바랍니다.
전혼잎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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