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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대한민국의 시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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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대한민국의 시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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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22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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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화다. 수많은 암초를 헤쳐가야 할 대한민국호의 시대정신이다. 대한민국이 더 정의로워지는 것을 국민이 염원한다는 말이다. 돌이켜보면 한국 사회가 숨 가쁘게 산업화를 성공시켰고 그 다음으로 짧은 시간 동안 민주화도 이루었다. 이제 사회의 다양한 재화와 부를 더욱 공정하게 키우고 나누며 민주주의를 더 이상 퇴보하지 않도록 정의롭게 만드는 시대가 와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매우 냉혹하다.

한국에는 갈수록 아기 울음소리가 사라지고 생산인구가 줄며 성장률은 점차 낮아져서 일본식 장기불황이 예고된다. 2015년 프리덤하우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는 파푸아뉴기니와 수리남(공동 57위)보다도 낮아 나미비아와 함께 공동 67위를 기록했다. 홍콩 정치경제리스크건설턴시의 2015년 아시아태평양 부패인식 보고서에는 한국이 아시아에서 잘 나가는 국가 가운데 가장 나쁜 9위이고 중국이 10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41개 국가 가운데 한국은 10명 가운데 7명이 정부를 불신하는 지경이라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체코와 함께 공동 26위에 머물렀다. 경제나 정치 모두 위기이다.

지난해 6월 신임 인사를 위해 청와대를 방문한 정의화 국회의장 고영권기자 youngkoh@hk.co.kr
지난해 6월 신임 인사를 위해 청와대를 방문한 정의화 국회의장 고영권기자 youngkoh@hk.co.kr

정의화다. 아시아의 용 가운데 하나이자 제3의 민주화 물결 국가 가운데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꼽혔던 한국에서 그나마 대의 민주주의와 삼권분립의 헌법적 가치와 원칙을 지켜내는 사람이다. 돌이켜보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정의화 의장은 이미 세월호 특별법을 통과시킬 때 여당의 직권상정 요구를 물리쳤고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처리할 때나 국회법 개정안을 처리할 때도 여당의 수의 논리에 의한 강행은 막고 야당의 장외투쟁 대신 표결 참여를 이끌었다. 의사봉 삼타를 할 때 한 번은 여당을 쳐다보고 또 한 번은 야당을 쳐다보며 마지막 한 번은 국민을 생각한다는 대한민국 의장의 역할과 리더십을 정의화 의장이 새로이 쓰고 있다는 평가가 괜한 것이 아니다.

이번에도 청와대의 반대나 압박에도 불구하고 정 의장이 선택한 것은 대한민국 헌법과 국회법이다. 원래 정 의장은 2012년 총선을 앞두고 막 창당되었던 새누리당의 비상대책위원회가 제18대 국회가 끝나기 전 반드시 통과시키자고 했던 국회선진화법을 반대했다. 국회가 아무 일도 못할 수 있다고 염려했던 것이다. 그리고 정 의장은 국민이 날로 악화되는 경제와 깊어가는 실업의 골 때문에 밤잠을 못 이루는 것도 모르는 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와 여당이 이른바 노동5법 등 쟁점 법안을 의장으로서 직권상정하라고 압박하는 것을, 국회선진화법의 요건에 맞지 않고 삼권분립이라는 헌법적 가치도 훼손하는 것이라고 거부했다. 정 의장은 청와대와 여당이 직권상정하라는 것을 정말로 직권상정할 수 있는지 법적인 근거와 절차를 가져와 달라고 요청했다.

다른 한편 정 의장은 2016년 4월에 실시되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2015년 12월 31일까지 선거구를 2대 1로 획정하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매우 중요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올해 안에 선거구가 2대 1로 획정되지 않으면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법적인 공백상태가 벌어질 것이니 아직 선거구 획정과 관련하여 아무런 진전이 없는 상황은 더없이 위중한 것이다. 여기에서도 정 의장은 끝까지 양당에게 타협과 양보의 의회민주주의를 주문하고 있다. 이제 곧 선거구 획정과 관련하여 여야의 타결이 이루어지겠지만 아직은 국민이나 출마 희망자가 애타게 기다리는 타협과 양보의 기미는 없다. 마지막 남은 기간 동안 정 의장이 어떻게 중재를 해나가고 해법을 제시할지 정말 궁금하다.

정 의장은 화려하거나 목에 힘주는 정치인이 아니다. 청와대와 여당이 대통령을 도와달라고 압박하고 자기 정치하는 것이냐고 또 압박하는데 원칙과 법대로 하다 보니 정 의장만 커졌고 의장의 리더십만 국민 가슴속에 새겨졌다. 이렇게 냉혹한 시절에는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정치가가 주목을 받는 법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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