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부부를 위한 두 번째 대리 출산을 앞두고 있지만, 부당한 대우를 받은 적이 단 하루도 없다.”
28세 인도 여성 수실라씨가 만삭인 상태로 뉴델리의 인도의학연구위원회(ICMR) 본부 앞에 섰다. 정부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대리출산을 금지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호주인 부부에 이어 지금은 독일인 부부의 아이를 임신 중이지만, 내 아이를 임신 했던 때보다 풍족하게 먹고 많이 자면서 지낸다”며 “외국인을 위한 대리 출산이 금지되면 다시 가난에 허덕이게 될까 걱정”이라고 11일 포린어페어스에 털어놨다.
법적으로 대리 출산을 인정해 왔던 인도 정부가 올 10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자국민의 상업적 대리모 행위 금지’ 의견서를 대법원에 제출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대리 출산을 의뢰한 외국인들이 자국 여성을 학대하는 문제가 끊이지 않는 탓에 제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대리 출산 경험이 있는 일부 여성들을 중심으로 “정부가 가난 등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냐”는 반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외국인 대상 대리 출산 시장 4억달러 규모
대리 출산은 주로 정자와 난자를 실험실에서 배양한 뒤 배아를 대리모의 몸에 이식하는 방식으로 실행된다. 대리 출산을 허용하고 있는 나라 가운데 규모가 단연 최고 수준인 인도에서는 매년 5,000여명의 아이들이 대리모에게서 태어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인도에서는 2002년 상업적 대리모 산업이 법적으로 허용되면서 시장 규모가 점차 커져 현재 인도에 설립된 관련 중개업체, 병원은 3,000곳에 달한다. 특히 전세계적으로 불임 인구가 크게 증가하면서 대리 출산이 엄격하게 금지된 자국의 법망을 피해 인도로 향하는 외국인은 한 해 수천여명. 인도의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대리모 시장 규모는 4억달러(약 4,700억원)로, 매년 20%씩 증가하는 추세다.
인도가 전 세계 대리 출산의 중심지가 된 가장 큰 이유는 저렴한 가격 때문이다. 대리 출산을 허용하고 있는 일부 서양국가들에서 대리모를 고용할 경우 9만달러(약 1억원) 이상이 드는 반면 인도에서는 6,500달러(약 770만원) 정도면 된다. 대리 출산에 뛰어들고 있는 인도 여성들 입장에서도 자국민의 대리모가 됐을 때는 8만~20만루피(약 142만~355만원)를 받지만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할 때는 최소 50만루피(약 890만원)를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산업화한 대리출산에 인도 정부가 제동을 걸기로 한 이유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대리 출산이 부작용을 초래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부는 최근 보고서를 내고 “대리 출산을 의뢰하는 외국인들이 모국어로 계약서를 써 해당 대리모가 세부 사항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고, 대리모가 외국인 부부의 아이를 낳는 도중 숨져도 병원이나 의뢰 부부 측에서 이에 대해 보상하지 않는 일도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포린어페어스에 따르면 2010년 뭄바이의 한 출산클리닉에서는 대리 출산모에 배아를 잘못 이식하는 사건으로 비극이 빚어졌다. 병원 측과 대리모는 착상 4개월 후에나 이 사실을 알게 돼 대리 출산을 의뢰한 부부에 알렸고, 부부가 아이를 포기해 태아가 버려지게 된 것이다. 수미야 스와미나단 ICMR 의원장은 “자신의 몸을 빌려줄 정도로 절박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라면서 “선택권이 있었다면 누구도 이런 일을 자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리모들 “나와 의뢰자 모두에 최적 선택”
하지만 대리 출산에 뛰어들고 있는 여성 본인들은 정부의 이 같은 시도에 반발하고 있다. 대리 출산 당시 부당한 처우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통해 생계 유지를 할 수 있었다는 입장이다. 수실라씨도 “내 아이를 가졌을 땐 하루 7시간 동안 설거지를 하며 밥벌이를 했다”며 “지금은 삼시세끼를 따뜻하게 대접받고 잠도 많이 자며 주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는다”고 했다.
전체 인구 중 빈곤층 비율이 30%를 넘어서는 인도에서는 생계 유지 수단으로 대리모를 자처하는 여성들이 많다. 남편이 중증화상 환자여서 경제 활동을 하지 못해 대리 출산에 나섰다는 란주 라주브하이씨는 가디언에 “나와 대리 출산을 의뢰한 부부 모두에 좋은 선택이었다”며 “내 입장에선 남편의 화상 치료비를 모두 지불한 데다 거처도 마련했고, 해당 부부는 그토록 원하던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대리 출산을 통해 얻은 돈은 6,225달러. 남편의 7년치 임금과 맞먹는 수준이다.
시각장애인으로 쉽게 경제 활동에 나설 수 없었던 안주만 바탄씨도 2011년 대리 출산을 했다. 당시 앙카라 인근 대리모 클리닉에서 대리 출산을 앞둔 39명 임신부들과 생활했다던 그는 “함께 있던 대리모들 중 대다수는 두 번째 대리 출산을 의뢰 받아 임신 중이었다”며 “모두 가장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정부의 의견서 제출이 이뤄진 10월에는 인도 전역에서 법안 추진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사우스델리에서는 임신부 100여명이 거리로 나와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은 무책임하다’는 구호를 외쳤고, 일부는 여전히 관련 정부 청사 앞을 점거 중이다.
인도인 대리모를 통해 아이를 갖게 된 외국인들도 움직이고 있다. 2년 전 인도 아나드에 거주하는 대리모를 통해 딸을 대리 출산한 영국인 레카 파텔은 최근 인도 정부의 대리모 출산 금지 법안에 반대하는 온라인 서명 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모든 인도 대리모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이 아니다”라며 “많은 불임 부부들은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인도를 찾는다”고 BBC에 말했다.
주체ㆍ행위 정의 어려워 입법 추진 난항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대리 출산을 금지를 두고 각계의 의견이 충돌하면서 인도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는 중이다. 특히 대리 출산을 의뢰한 부모와 대리모, 아이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어려워 법안 마련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가 2008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대리모와 아동 보호를 위한 ‘조력 생식 기술법’ 입법이 7년 째 답보 상태인 것도 이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외국인의 대리 출산을 금지하는 법이 의회서 통과하려면 현행법 개정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대리출산법연구소의 하리 라마수브라마니안 연구원은 “대리 출산에 관한 법안이 통과되려면 현행 가족법 자체를 변경해야 한다”며 “대리 출산의 경우 생물학적 어머니와 법적 어머니가 같지 않은데, 현행법상 ‘어머니’의 정의는 이를 구분할 정도로 구체적이지 않다”고 설명했다.
외국인의 대리출산 의뢰를 아예 금지하는 대신 정부가 계약서 이행에 대한 철저한 감시를 하는 게 우선이라는 주장도 있다. 지난해 ‘아이를 만드는 사람들: 인도의 대리출산 이야기’라는 제목의 책을 펴낸 기타 아라바무단은 “대리 출산 자체를 금지시키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라며 “대리모와 의뢰자들이 서명한 계약서가 충실한지, 그리고 그 내용이 실현되고 있는지를 철저히 규제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밝혔다.
신지후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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